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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게 없다.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바쁜 게 낫다. 뭐든 하고 있을 때면 잠시 내가 쓸모 있게 된 것 같다. 유능해 보이도록 한다. 별 거 아닌 일을 고단하게 해낸다. 그 비효율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덜그럭거려도 굴러가긴 하는 자동차처럼.
웃는 건 익숙하다. 헤픈 미소가 늘었다. 그 후 침묵.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이러한 엉터리의 파편들. 제대로 된 게 없다. 손에 자잘한 흉터가 많다. 자주 부딪힌다. 우스꽝그럽게 다치고 웃는다. 나를 대놓고 걱정하는 것보단 가볍게 놀림받는 게 편하다. 즐겁지 않아도 웃었다. 보여지는 건 잘 보여져야 한다. 그렇다보니 이따금 나도 모르게 모든 게 소진된 표정을 짓고, 그건 당황스럽지만 진실된 내 모습.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은 점점 검정에 가까워진다. 초록도 잘 모르겠다. 그냥 가볍게 살고 있다. 인스턴트 인생. 흥미 위주의 간단한 글과 영상만 찾는다. 영화는 졸리고 노래는 따분하고 시는 주저하게 된다.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보다 의미만 전달되면 문제 없다는 듯이 말한다. 하나 둘 망가져간다. 쌓아 온 습관에 균열이 생긴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하려 했으나, 그 누구도 날 사랑할 이유가 없다. 이제 나는 추레하고, 재밌지 않고, 허우적거린다. 아직도 그렇다. 나이는 상처처럼 적립된다. 자는 게 좋겠다.
바쁜 척하고 변명처럼 자자. 내일은 더 변변찮을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쓸모없었다. 우울은 바닥났다. 잡초 하나 자라지 않는다. 밭을 갈아엎듯 끝없이 나를 쌓고 무너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