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니게 되니 내거나 열심히 하자
정체된 것 같아, 방향성을 모르겠어
요즘 자주 만나는 친구와는 꿈 이야기를 많이 한다. 돼지꿈 개꿈 그런 꿈이 아니라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둘 다 포부가 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나아가는 열정맨들이다. 가끔은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해 자책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날이 한 뼘씩이라도 성장해나가는 그런 사람들. 그래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
하지만..., 이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로 미루어 눈치챘겠지만 요즘 나는 나름의 큰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뭐 대단히 이뤄놓은 것도 없으면서 무슨 번아웃이냐고 비죽댈 수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처럼 별것 아닌 사람에게도 힘이 들고 답답한 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나의 경우는 일 년에 두어번꼴로 그분이 왔다.
이번 내 번아웃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방향성이었다. 그렇다. 나는 도무지 내가 무슨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책을 내기는 냈는데, 그 이상의 성과를 어떻게 내야 할지 답답했다. 이제 단순한 출간을 넘어 문학 작가로 등단하거나 유의미한 판매실적을 기록해나가야 할 단계였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스스로가 못마땅한 거였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입이 부르트도록 하는 이야기도 역시나 이 방향성이었다. 특히나 그 고민은 SNS에 글을 올릴 때 더욱 짙어지곤 했다.
한때는 작가가 되기 위해 등단만이 답이던 시대가 있었다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사는 이 시대는 등단 외에도 길이 많은 시대다. 그중 하나가 SNS를 활용해 인기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감사하게도 나는 출간을 했으니 작가라는 타이틀은 용케 얻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작가는 세상에 너무너무 많았다. 하물며 SNS에서는 몇십만 팔로워를 거느리며 고공행진을 하는 작가가 넘쳐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책만 냈다 뿐이지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변화를 꿰차야 할까.
이 고민을 타개하기 위해 참으로 여러 방면의 일들을 계획했었다. 차라리 등단을 포기하고 SNS 유명작가의 길을 택할까? 그러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요’를 눌러줄 것 같은 글을 파악해 그것만 대량생산 해내면 되지 않을까? 한두 문단짜리 짧고 쉬운 글이 유행이라고 하니, 정말이지 매일매일 그렇게 써볼까도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는 그 방법을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가라고 해서 모든 글이 쉬운 것은 아니다. 나는 10페이지짜리 글은 쉽게 써도, 내 인사이트가 담기지 않은 짧은 글을 쓰는 데는 도통 젬병이었으니까.
의심될 땐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그 무렵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있으니 나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SNS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고민해온 듯했다. 나는 다른 사업가들의 피드를 보며 이 사람들처럼 해보는 건 어떠냐고 어쭙잖게 친구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었다. 예쁜 장소에 가서 명품백을 들고 예쁜 사진으로 승부를 걸어보라고. 화려한 일상을 보여주며 동경을 불러일으켜 보라고. 하지만 친구도 그렇게 하면 좋아요가 많이 눌리는 SNS 스타가 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주저하는 듯했다. 마음 깊이에서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친구나 나나 오래 고민하다가 또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오늘 친구의 피드를 보게 되었다.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올려야 할지 아니면 담백한 브랜딩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 친구. 고민 끝에 친구가 새로 올리기 시작한 피드는, 가짜 삶을 보여주는 자랑하기식 피드가 아닌 모두와 함께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정보성 콘텐츠였다. 올린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피드가 번뜩이며 내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깊은 울림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나는 내 인스타그램으로 돌아와 지난 시간 기록해왔던 내 글들을 다시 주욱 살펴보았다. ‘좋아요’가 몇만개씩 눌리는 대박 인기 게시물은 아니지만, 그동안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써왔던,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은 오롯한 내 글들이었다. 그 안에는 내 나름의 멋과 결이 있었다. 더불어 SNS는, 그런 내 글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에 지나지 않았다.
잡념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좋아요’를 많이 받는 인스타 작가가 꿈이었던가? 아니, 결코 아니다. 좋아요가 많으면야 좋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에세이도 쓰고 소설도 쓰고 묵직하게 오래오래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마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의 다이어리 앞면에는 ‘2022년 목표 : 신춘문예 도전하기’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다. 연초에 적어놓은 것이었다. 대체 이 다짐은 어디로 가고 SNS 타령을 해댄 거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내 머릿속에는 족히 열댓명의 사공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리타분하지만 깨달음을 얻었을 땐 또 다이어리에 떡하니 적어주는 게 진리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다이어리 한편에 이렇게 적어본다.
‘SNS 집착 금지. 하던 대로 열심히 쓰자’
오늘도 인스타그램에는 ‘좋아요’가 몇만개씩 눌린 글귀 피드가 보인다. 물론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조용히 인정한다. 그러니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내 것을 보기로 꾹 다짐하는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방법으로 오래오래 이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정직한 방향성이 아닌가 싶다. 방향성을 새로이 점검한 이 뜻깊은 날을 기리기 위해 맥주 한 캔을 따야겠다.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