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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26. 2022

새우는 왜 태어났는가?

동물에게 느끼는 감사함과 미안함

새우야 미안하다.


어머님께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펄떡대는 새우들에게 사과를 하십니다. 큼지막한 냄비 뚜껑이 들썩댈 때마다 어머님께선 계속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죠. 튼실한 대하들은 이미 맛있는 소금구이로 익어가는 중. 어머님 앞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이 한 말씀 더 하십니다.


우리 새우한테 감사하면서 먹자.


시부모님 생신에 맞춰 도착한 시댁 근처의 한 횟집. 다른 친척분들도 한 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저녁식사를 하던 중 대하 구이가 나오자마자 어머님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내가 알기론 우리 어머님은 교회를 안 다니시는데? 살아서 서서히 죽어가는 불쌍한 새우를 위한 기도랍니다.




기도하면서 먹게 된 새우


저도 그렇거니와 저희 시댁은 교회, 절 근처도 안 가본 무종교 집안입니다. 남편을 만날 때도 그게 좋아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난데 없는 '새우를 위한 기도'가 시작되다니! 저희 가족들 모두 횟집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새우를 위한 기도를 올렸죠.


사과와 미안함을 담아 한 마디씩 주고 받고 나서야 본격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 생각을 해보니 소녀처럼 마음이 여리신 어머님은 항상 작은 생명도 소중히 하셨던 분 같았습니다. 한번은 시댁 아파트 단지에 아기 참새가 떨어져 죽었는데 어머님께서 두 손으로 품어 화단에 고이 묻어주셨죠.


그럼 여태까지 시댁에서 먹은 고기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 아이들은 왜 우리의 기도를 못 받았던가? 의아한 눈빛으로 새우를 먹고 있는 저에게 어머님이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 혹시 무슬림? 기도 속에 든 생명존중


"얘네들도 사람에게 먹힐려고 태어난게 아니잖아. 그래서 더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어릴 적 닭 잡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충격에 사로잡혔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 먹어야 하고, 또 사람이라 미안해하고 감사해하면서 먹는다고. 항상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고.


몇 년 전 '할랄' 식품을 취재할 때 였어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식품을 만들어내는 인증을 말하는 건데 이 할랄 기준에 맞춰 고기를 생산하기란 정말 까다롭습니다. 특정 방향으로 고기를 돌려 절단을 해야 하고, 고기 손질하기 전에는 꼭 기도를 해야하는 등 과정과정마다 손질하는 이의 마음가짐과 세세한 과정, 위생적인 절차도 까다롭죠.


이슬람 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원주민들, 몽골인, 알래스카 에스키모인까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나 사냥에 성공하면 기도를 올리고, 짐승의 배를 가르기 전엔 최대한 고통이 덜하는 방법을 택해 고기를 얻습니다.


신께 올리는 기도든, 짐승에게 하는 기도든. 그 마음엔 사람이 귀한만큼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도 고귀하고, 한 생명을 앗아가면서 얻은 숭고한 먹을거리에 감사해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적당히 취하겠다는 뜻 아닐까요?




고기는 제품이 아닙니다.


요즘엔 당연히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 살진 않죠. 그리고 기도를 올리고 고기 먹을 일도 없습니다. 다만 대량생산 되는 고기와 그 고기를 제품처럼 찍어내는 공장만이 있을 뿐이죠. 어머님의 기도를 통해 저는 그동안 고기를 '제품'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동물들의 죽음을 당연시 하고 있진 않았나?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미안해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는가? 사람이니까 먹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이니까 가질 수 있는 미안함과 감사함, '사람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입 속에서 터지는 3초간의 육즙 때문에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 버리고, 맛있는 걸 즐기겠다는 쾌락에 가려 동물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은 뒷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육체를 채워야할 숭고한 죽음들이 사람의 욕망을 채우고, 그것들이 과잉으로 넘쳐나 비만과 성인병,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시대가 됐죠. 뭐든지 적당히 먹고, 절제할 줄 알아야 그에 따른 소중함과 감사함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웠던 기도


어머님의 기도를 들으니 유치원에서 배웠던 식전 기도가 생각납니다. 농부아저씨, 이런 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삐약아 미안해, 꿀꿀아 미안해. 내 뱃 속에 넣어서 미안하지만 이거 먹고 쑥쑥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게. 맛있는 음식 남기지 않을게! 라고.


훌륭한 사람? 뭔가 거창한 말이지만 앞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1일 1채식을 한다면 누구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배부르게 먹고, 남아 있는 새우를 포장해 와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먹기 불편한 긴다리, 뾰족한 주둥이는 제거하고 머리, 몸통 모두 껍질째로 넣었습니다.


이렇게하면 육수도 맛있지만 새우 껍질에는 키토산이 많아 그대로 꼭꼭 씹어 드시는 것도 좋아요. 다만 치아가 약하거나 소화기능이 떨어진다면 속살만 드세요. 새우 머리에는 타우린과 DHA가 풍부한데 미역과 푹 끓인 후 함께 드시면 색다른 미역국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는 새우, 새우야 고마워!


*페스코 베지테리언: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를 제외한 생선, 해산물까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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