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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28. 2022

카레는 사랑을 싣고

첫 데이트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카레는 역시 쇠고기카레가 맛있죠.


남편과의 첫 데이트는 인도 전통음식 레스토랑에서였습니다. 인도 출장이 잦았던 그는 현지 음식을 잘 알고 있다며 대학로의 한 식당으로 저를 데리고 갔죠.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보며 하는 말은 누가 뭐래도 3분 쇠고기 카레가 제일 맛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래?


얼마전 친구와의 카레 에피소드를 써내려 가면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카레 하니까 생각이 나는 우리의 첫 데이트. 남편은 카레라면 사죽을 못 쓰는 자칭 카레 마니아입니다. 인도에서 맛 본 여러 향신료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단연 최고는 오뚜기 쇠고기 카레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듭니다.  




수신거부는 왜 했어? 


그렇게 첫 데이트가 끝나고 무엇이 맘에 안 들었는지 저는 남편(구 소개팅남)의 전화를 씹어 버렸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간 인도 레스토랑에서 3분 커리를 찾던 촌시러운 남자. 아니 그럴거면 데리고 가지를 말던가. 저의 뇌리에 남편은 이상한 아저씨로 박혀 버렸고 문자에 답장도 하기 싫어 수신거부를 해버렸죠.


"그때 수신거부는 왜 했어?"


첫 데이트 얘기에 남편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그때 수신거부를 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젠장." 진심을 담아 혼잣말로 속삭였죠.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 다신 안 만나기로 했는데 왜 다시 그에게 연락한 걸까?




매력적인 커리 향기처럼 다가온 남자 


는 개뿔. 그와 먹었던 매콤한 인도 커리가 먹고 싶어 레스토랑에 다시 가고 싶은데, 이름이 뭐였는지? 위치가 어디였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다. 거의 한 달 동안의 수신거부에도 불구하고 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뜸 들려온 남편의 대답.


"저랑 같이 먹죠." 인도 커리가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말에 갑자기 남편이 말했습니다. '오! 이 남자 왜 이러지?' 뭔가 박력 있으면서 남자다운 모습에 저도 은근히 끌리기 시작했죠.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지금에야 물을 수 있는 저의 질문에 "그때 아니면 못 볼 것 같았거든.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어. 다시 도망 못 가게." 헐. 완전 로맨틱한 장면을 상상했다면 큰 오산!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저를 노려보면서 하는 말.


"수신거부 당한게 억울해서라도! 만나서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다! 왜!"


헐. 카레처럼 매콤한 이 남자! 응. 그래 여보, 다시 못 도망가게 만든 거라면 성공했네. 근데 나, 그때 수신거부한 죗값을 이렇게 받고 있는 거늬? 응?



새롭게 눈 뜬 채식 카레의 매력 


최근 남편과 들른 태국 음식점에서 푸팟퐁커리를 먹게 됐습니다. 평소에도 향신료 팍팍 들어간 동남아 음식과 고수를 사랑하는 남편 덕에 여기저기서 이국적인 음식 접할 기회가 많았죠. 그런데 그날 따라 유달리 강하게 올라오는 향신료 향. 저는 몇 입 못 먹고, 손도 못 대고 있는데 남편은 맛있다면서 혼자 한 그릇을 뚝딱 헤치워 버렸죠.


예전부터 육식인간으로 살아 와서 그런지 강력한 향신료를 많이 애정하는 남편. 집에서도 카레가 먹고 싶을 땐 무조건 쇠고기 카레만 찾습니다. 새우, 닭고기 등 다른 걸 넣어 봐도 무조건 일순위는 소고기! 채식을 시작한 이상 남편의 입맛도 바꿔봐야겠다는 사명(?) 같은 게 생겨버렸습니다.




채소가득 카레는 어때? 


남편은 언제나 쇠고기 카레에 푹 빠져 있어서 이 기회에 채소가득 카레를 맛보여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 3분 카레처럼 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데다 동물성 원료는 없고, 양파, 토마토, 감자, 당근 등 다양한 채소가 들어 있었죠. 

      

게다가 병아리콩, 새송이버섯, 연근 등 영양만점 채소가 가득 들어있어서 저의 1일 1비건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카레를 그대로 데운 후 밥 위에 얹기만 하면 끝! 저의 도전은 성공적! 쇠고기 카레에 견주어도 손색 없을 맛이라며 남편이 앞으론 이 카레로 먹겠답니다. 야호!  




채식 초심자, 매콤한 남편


사실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쇠고기 카레보다 채식 카레가 맛있네!' 였어요. 하지만 첫 데이트부터 인도식 커리전문점에서 3분 카레를 찾았던 솔직한 입맛이 어딜 가겠나요? 고집이 쎈 남편. 저도 입에 발린 선심성 멘트보다는 조금 섭섭하지만 믿을 수 있는 남편의 솔직함이 좋아요.  


여보, 당신은 매콤한 커리처럼 매력적인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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