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Oct 21. 2022

비건 카페는 어디있나요?

비건인에게 선택권은 사치?




요즘들어 우리 부부의 낙이 있다면 오전 늦으막에 일어나 집 근처 카페로 산책을 가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겁니다.  


그중 최애 카페는 걸어서 5분 거리의 공원 옆 카페. 생긴지 얼마 안 된 이 카페는 바리스타 출신 사장님이 국제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으셨는지 여기저기 상장과 상패가 걸려 있지요.


커피 맛도 탁월해서 점심 때가 지나 1시 쯤만 되도 자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남편과 저는 급 추워진 가을날씨에도 찬바람 쌩쌩 맞으며 기어코 테라스 자리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 빵을 먹고 오죠.


그런데 저는 도착해서 메뉴판 앞에 설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죠.




비건인에게 선택권은 사치일 뿐


얼마전부터 시작한 1일 1비건식. 워낙 채식 반찬을 좋아해서 집에서 먹을 땐 별다를 게 없지만 카페에 가면 주문부터 우물쭈물 망설이게 됩니다. 제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거든요.


남편과 같이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 끝날 일을 뭐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제가 달고 사는 '위염'이란 녀석은 빈 속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이 부으면 불 같이 일어나곤 합니다.


덕분에 라떼 아니면 디저트 빵과 함께 먹어야 하는데 우유는 비린 맛때문에 싫고, 빵에 들어가는 버터와 치즈의 유제품 냄새도 싫어서 이것저것 마땅한 메뉴를 찾느라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서있기도 하죠.


차를 마실까? 하다가도 몽롱한 상태에서 카페인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커피를 찾고,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향긋한 향기에 취해 커피를 시키게 됩니다.


결국 남편따라 빵을 곁들여 아메리카노를 마시거나 우유 들어간 라떼 한 잔을 마시게 되죠. 이거나 저거나 건강과 기호성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셈이 되네요.



두유 변경은 500원 추가?


채식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제가 가는 카페에는 두유 옵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집근처 카페를 뒤져봐도 두유나 오트밀크로 바꿔주는 곳은 10곳 중에 1곳 남짓? 스타벅스가 아닌 이상에야 우유 변경이 가능한 곳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커피맛으로 따지자면 스타벅스보다 동네 카페가 입에 잘 맞고, 그나마 변경 가능한 곳도 500~700원 정도의 추가 요금이 발생하더군요. 감사하게도 추가 비용 없이 아몬드브리즈 라떼를 먹었던 곳은 발품을 더 팔아야 하는 곳이라 배달로 시켜먹어야하고.


남편과 담소를 나누며 귀여운 강아지를 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은 정말 개나 줘버려야 하죠. 공원 옆에서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는 우리 부부의 낙은 채식을 시작한 저에게 일정 부분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건강을 포기할 것이냐? 기호성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소소한 낙을 포기할 것이냐?



취향에 대한 존중과 배려


비건인에게 선택권은 사치에 불과한가요? 저는 입맛따라 기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곤 하지만 굳은 신념 하나로 비건을 유지해나가는 분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품을 더 팔아야 하거나 일정 부분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거나.


아니면 입맛, 건강, 신념 중 뭐 하나를 희생하는 순간에 매번 맞닥뜨리게 되니 비건이 쉬운 아니죠. 예전 사찰음식을 취재할 때 한 스님께서 도시로 나오면 먹을 게 없어서 고생하신단 말씀, 라면 하나도 먹을 게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최근에는 비건 음식, 메뉴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지만 체감 상으론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채식을 유지하기엔 정성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눈치 보이는 채식, 채식이 죄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편과 발품을 팔아 더 멀리까지 산책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운동 겸 동네를 거닐다 새로 발견한 프렌차이즈 커피숍! 그래도 여기는 대기업이니까 뭔가 있겠지? 싶어서 들어갔는데 역시나. 샌드위치, 파니니에는 햄과 치즈가 모두 들어가있고, 라테 종류는 모두 우유로만 구성돼 있었습니다.


남편은 잡식, 저는 채식인인데 메뉴 구성이 반반은 아니더라도 비건 메뉴 하나쯤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토마토 가득 넣은 산뜻한 샌드위치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너 그러다가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겠어." 남편이 한 마디 거듭니다. 그리곤 "너 채식 계속 할거야?"라고 묻습니다. 뭔가 불만에 찬 눈빛으로. 요즘들어 회도 잘 안 먹고 입맛이 변해가는 절 보면서 자신의 먹거리도 지장 받을까봐 꽤 걱정되나 봅니다.




가족의 배려도 사치인가?


"나는 극단적인게 너무 싫어!"라면서 only 채식만 하는 비건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남편. 다른 사람의 취향과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가 더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싸우는 게 싫어 일단 꾹 참고 넘어 갑니다.


사실 저는 하루 한 끼 비건을 하고 있는데 눈 앞에서 저렇게 얘기하는 남편을 보면 위축되거나 눈치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거기에다 채식인이 아닌 남편을 위해 제가 혼자 먹는 밥을 제외하고는 동물성, 식물성 재료로 골고루 밥상을 차려내고 있는데. 뭐라고?


'이해'라는 것은 남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에 대입해 머리 속으로 헤아리고 인지한다는 뜻인데 저는 저런 태도로 일관하는 남편에게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각자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남편은 저의 채식지향적인 입맛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동한 심각해져 있다가 말이 없어진 저에게 "성수동에 비건 카페 생겼다는데 같이 가볼까?" 라며 남편이 먼저 말을 건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비건 카페가 아닌 곁에서 나를 존중해주는 가족의 배려라는 걸 남편은 알까요? 제가 찾던 비건 카페는 남의 동네에 있고,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인가 봅니다.

 

이전 15화 비건 청국장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