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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19. 2023

포짜오 phở chào, 베트남!

쌀국수로 냉장고파먹기

포짜오(phở chào)!


비행기를 타지 않고 5분만에 베트남으로 날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마법 같은 일이 우리 집안에서 일어난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우선 베트남에서 날아온 인스턴트 쌀국수 하나를 준비해주세요. 거기에 냉장고에서 시들해져가는 채소들을 몽땅 넣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며 한 그릇 후르륵 먹어줍니다.


안녕? 쌀국수!


사실 베트남어로 '포짜오(phở chào)' 라는 말은 '안녕? 쌀국수!' 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이 말은 저희 부부가 자주가는 동네 쌀국수집 이름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인 사장님께서 직접 운영하는 이 가게는 쌀국수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해 항상 손님들이 많아요. 거기에 저희 부부도 있습니다만. 그런데 여보, 우리 외식비는? 오빠! 돈 많아?



#안녕? 해장

맛으로 따지자면 베트남 본토 출신의 사장님 손맛은 따라갈 수가 없죠. 게다가 가게 인테리어도 베트남풍으로 꾸며놓아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하노이 근교 어딘가에 온 기분입니다. 남편과 저는 첫 해외여행으로 베트남을 갔었는데 그때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사장님의 취향이신지?가게 안쪽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베트남 가요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 자아냅니다. 남편은 뜨끈하고 진한 쌀국수 국물로 해장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술을 마신 다음날은 여기로 가자고 하죠.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한정된 자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으셨나요? 우리의 외식비가 당신의 해장비용으로 줄줄 새고 있다는 거. 여보, 술은 밖에서 마셨으면 해장은 집에서 합시다. 여보, 돈 많아?



#라면대신 쌀국수

그래서 베트남 향기가 물씬 나는 인스턴트 쌀국수를 한 박스 주문했어요. 이렇게 많이 시킨 이유는 라면대신 칼로리가 적은 쌀국수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편은 라면도 너무 좋아해서 예전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끓여 먹었는데 지금은 쌀국수 한 번, 라면 한 번 이렇게 번갈아가며 먹고 있어요.


그래도 기름기가 적고 몸에 좋은 채소를 마음껏 넣어 먹을 수 있으니 건강엔 더 좋겠죠? 채소도 듬뿍 넣어 먹다보면 나트륨 섭취도 줄일 수 있고, 건더기만 건져 먹어도 배부르니 국물을 덜 먹게 됩니다.


 

#냉장고 파먹기의 1등 공신

쌀국수는 기름에 튀기지 않아 소비기한이 긴 편이에요. 그래서 두고두고 보관했다가 냉장고 채소들이 시들해질 무렵이면 한번씩 냉장고 털이용으로 해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확실히 라면보다는 여러 채소들과의 궁합이 잘 맞아서 금방 물러지는 숙주, 청경채, 상추 등 여러 엽채류와도 맛이 정말 잘어울려요.



한번은 저희 친정에서 고기 싸먹으라고 산마늘(명이나물)을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집에서 고기는 잘 먹지도 않고 장아찌도 아닌 파릇한 잎사귀로 보내주셔서 어떻게 먹어야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막판에 쌀국수에 넣어먹었습니다.


향채답게 정말 쌀국수와 잘 어울리더라고요. 뜨끈한 국물에 담그니 단맛도 더 올라오고 약간은 알싸한 맛과 풍미가 쌀국수 국물과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 시들해져가는 상추도 넣고, 볶아 먹으려 샀다가 많이 남아버린 청경채, 살사 만들어 먹으려고 샀다가 남은 라임즙도 좀 짜서 넣으면 정말 베트남, 그 자체입니다.



매콤한 홍고추, 청양고추도 다져넣고 대파, 양파 모두 얇게 썰어 뜨끈한 국물에 넣으면 단맛만 남고, 맵고 찡한 맛은 다 사라집니다. 금방 변하기 쉬운 숙주와 레시피에 쓰다 남은 고수가 있다면 쌀국수 꼭 해드세요.  


#남편은 고수지향, 저는 채식지향

남편은 고수를 너무 좋아해요. 쌀국수 말고도 곰탕같은 국물요리에 넣어 먹거나 그냥 무쳐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는 고수라면 그냥 저냥 먹는 편이긴 한데 베트남 현지에서 먹던 맛은 못 하더라고요.


냉장고 속 남는 채소들을 몽땅 꺼내 입맛에 맞게 넣어 먹어요. 아래는 고수지향 남편이 플레이팅한 쌀국수


남편과 베트남에 여행을 갔을 때 직접 향채를 재배하던 쌀국수집이 있었어요. 거기서 갓 따온 싱싱한 채소를 쌀국수에 넣어 먹던 느낌. 그 느낌을 잊지 못 해서 한국에서 이렇게 먹고 있나봅니다. 아무튼 고수 좋아하는 남편과 채소 좋아하는 제가 집에서 저렴하게 한 끼 떼울 수 있는 요리기도 하죠.


 

얼마 전엔 베트남산 비건 쌀국수를 발견해서 페스코 채식으로 남편과 맛있게 먹었어요. 오른쪽은 남편이 좋아하는 오징어숙회
베트남으로 날아가고 싶다요.

부추, 쪽파, 샐러드용으로 샀다가 시들해져가는 새싹채소, 메밀국수 곁들임으로 샀던 무순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쌀면과 후르륵 들어가는 채소의 아삭거림, 산뜻한 맛은 남아 있고 뜨근한 국물에 아린 맛과 풋내들은 사라집니다. 여기에 양파 털이용으로 소개했던 3분 초간단 양파절임을 곁들이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식초 대신 상큼한 맛을 내기 위해 샀던 레몬이 남아 있어서 살짝 뿌려봤는데 라임 없이도 '여기가 베트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쌀국수만 있다면 조금씩 남았던 채소들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한 끼 식사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사로 외식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이러다 정말 베트남 가겄쥬?


홍고추는 사랑입니다 ♥

여보, 집에서 쌀국수 먹고 정말 베트남 갑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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