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20. 2023

30,500원 아끼는 멸추주먹밥

야식 땡길 땐 주먹 앞으로!

멸추김밥 먹고싶은데...


12시가 넘은 시각, 남편은 야식이 땡긴다며 배달어플을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평소에 분식을 잘 먹지 않는 사람이지만 한달에 한 번정도?는 가끔 분식을 먹고 싶어할 때가 있어요. 소녀소녀한 눈빛으로 떡순튀에 김밥 얘길 꺼낼 땐 제 여고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안 돼! 기다려!


저도 매콤한 떡볶이에 멸추김밥이 먹고 싶긴한데 문제는 외식비죠! 물가도 오른 마당에 외식비라고 안 올랐을까요? 일주일에 두어번 배달어플을 쓰다보면 나중엔 습관처럼 집밥 대신 배달음식을 찾게 됩니다. 그전에 입맛부터 단속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여보, 간식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물끄러미 쳐다봐도 소용없다규! 안 돼! 기다려! 주방에서 멸추주먹밥 뚝딱 만들어올테니까!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부앙~! 끼이익!" 이것은 환청인가? 내가 분명 남편에게 멸추주먹밥을 만들어 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주방에서 뚝딱뚝딱 칼질을 하고 있는 동안 환청인 줄 알았던 오토바이 소리는 기어코 우리집 공동현관 앞에 멈춰섰습니다.


"4층." 곧 엘레베이터 층수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안내음이 들린 후 우리층에 멈춰선 엘레베이터 안에서 배달기사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벅저벅.


이노무 인간이 나몰래 배달을 시킨건가? 기다리라고 했을텐데 그새를 못 참고! 마침 냉장고에 남아있던 멸치볶음과 매콤한 청양고추를 팍팍 썰어넣고, 오독오독한 식감이 매력적인 오이지무침을 쫑쫑 썰어넣어 간을 맞추면 얼마나 맛있게요?


또, 마지막으로 참깨 툭툭, 참기름 한 숟가락 휘 둘러주면 고소함은 배가 되고, 간이 안 된 김밥김을 꺼내 6등분으로 잘라 여기에 조물조물 동그랗게 뭉친 주먹밥을 올려 감싸주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멸추주먹밥 완성인데 왜?


"저벅저벅." 배달기사님의 발자국 소리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더니 "띵동!" 벨소리가 들리는 건, 옆집이었습니다. "옆집은 실패했군." 야식을 참아내지 못한 옆집을 향해 남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죠. 어쩔 땐 저도 배달음식이 너무 당기기도하고 늦은밤 주방에서 뭘 하는 게 귀찮고 싫지만 그래도 외식비 아끼고, 냉장고 비우기라는 미션을 성공하고 나면 나름 뿌듯해집니다.


 

#마른반찬, 김을 모아모아 찬밥처치 완료

몸에 좋으라고 팥밥을 해놨더니 남편은 영 입맛에 안 맞나봐요. 쌀밥과는 달리 입안에서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콩, 팥이 싫다나 어쩐다나. 그래도 저는 꿋꿋이 콩과 팥을 넣어 밥을 한답니다. 그래서 항상 찬밥이 남아있어요. 시댁에서 주신 마른반찬도 오래 남지 않게 후딱후딱 먹어야 하는데 짠맛이 강한 오이지무침은 빨리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편도 그렇고 저도 짠맛이 강한 반찬은 많이씩 집어 먹진 않아서 늘 최후의 보루처럼 쟁여두고 있죠. 게다가 시댁에서 오이지무침을 하도 주시니 거의 김치보관실에 묵은 김치들과 합숙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한번씩 장아찌로 간을 해주면 냉장고 비우는 맛이 쏠쏠하죠.


저희 집은 조미김 대신 아무 간이 안 된 '김밥김'을 밥에 싸서 먹고 있어요. 조미김은 오래되면 기름 쩐내가 심해져서 버려야하는데 김밥김은 프라이팬에 쓱 한번 구우면 고소함이 살아나고 눅눅함도 없어집니다. 간도 없어서 이렇게 주먹밥을 해먹거나 여러요리에 토핑처럼 올려도 짜지 않게 먹을 수 있어요.



#결국 3만 원+ɑ를 아꼈다.

컵라면 하나와 주먹밥을 남편에게 내어주면서 '우리가 과연 얼마를 아낀걸까?' 생각해봤습니다. 최소주문금액 13000원, 거기에 배달팁 3000원 포함하면 16000원? 우린 16000원을 아낀걸까? 이 질문에 남편은 단연코 "아니!"라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우리가 과연 최소배달비만 시켰을까? 남편이 배달어플을 켜고 주문을 했다면 야식 생각이 없었던 나까지 먹고 싶은 걸 주문했을 테고, 그럼 라볶이 7500원에 멸추김밥 5500원, 오뎅탕 7500원, 순대 4000원, 모둠튀김 6000원. 여기에 플러스 배달비까지.


"그럼 30,500원을 아낀 게 아닐까?" 라는 게 남편의 결론이지요. 13500원인 2인세트메뉴로도 모잘랐을 거란 정확한 논리에 저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아내의 노동력과 사랑을 합친다면 삼 만 오 백 원 보다 더 값진 멸추주먹밥이 아닐까요?



남편...30,500원...나한테 줄 수 없을까? 싫다고? 그럼 뭐...밥통에 저금한 셈 치지뭐.

이전 05화 우리집이 중국집이냐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