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냐, 30회냐

PT 결제를 눈 앞에 두고

by 자몽맛탄산수

"체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PT쌤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뇌 회전 속도에 액셀을 밟았다. 갓 배운 코어 운동보다 두뇌 운동이 중요한 타이밍이 코앞에 다가왔다.


고객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난 지 오래. 내게 남은 최후의 고민은, 20회냐 30회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복부에 남아있던 잔잔한 긴장이 내 손을 타고 협상 테이블로 올라왔다. "그래서..." 쌤이 아니라 직원으로 돌아가 사뭇 건조해진 그녀의 말꼬리. "저 PT 하긴 할 건데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의, 흔들리는 말꼬리.


협상의 진짜 상대는 사실 나 자신이다. 이만큼 할 테니까 운동복 1개월만 더 넣어주세요- 와 같은, 농담 반 진담 반 능글맞은 협상을 할 만한 깜냥이 안 되는 내가 목돈 결제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합리성으로 똘똘 무장한 나의 에고. PT쌤은 협상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조력자일 뿐이다.


10회, 회당 단가 7.7만 원, 총 77만 원, 헬스 1개월 무료.

20회, 회당 단가 6만 원, 총 120만 원, 헬스 2개월 무료

30회, 회당 단가 4.5만 원, 총 135만 원, 헬스 3개월 무료.


단가에 홀린 머릿 속 계산기는 이미 30회를 외치고 있었으나, 곧 사라질 목돈에 대한 애도, 혹은 질척거림의 일환으로 쓸데없이 계산적인 척을 해본다. "제가 20회랑 30회 중에 고민 중이라서..." PT 가격표를 뚫어져라 읽는 척하며 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쌤, 20회가 아니라 30회를 끊어야 할 이유를 제 에고에게 어서 깨우쳐주세요.


쌤은 눈알을 두어 번 좌우로 굴리며 잘 먹힐 레퍼토리를 검색하더니, 어, 음, 20회도 많이들 하시는데, 하고 밑밥을 깔고, 30회가 가진 최고의 장점, 단가를 집중적으로 어필했다. 솔직히 이 단가는 정말 너무 치트키 아닌가?


그러나 치트키를 뚫고 나온 에고의 반격. "3개월 동안 30회 다 완주할 수 있겠어?"


30회를 기간 안에 못 끝내면 어떡하죠? 중간에 아파서 못 나오게 되면 홀딩되나요? 제가 혹시나 이사 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나요? 이사가 아니라도 중간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요? 이런 건 계약서에 안 쓰여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저희가 다 상황 봐서 조정해드려요, 쌤은 누가 들을 새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녹음이라도 해야 효력을 갖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오픈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이 헬스장의 최초 악평을 남기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는 사실 정도만 머릿속에 저장해두기로.


자포자기한줄 알았던 에고, 회심의 재반격. "일단 하긴 하는데, 횟수는 좀 더 고민하다가 첫 수업 날 결제하겠다고 해"


역시 에고는 만만치 않다. 옷 좀 갈아입고 오겠다는 말로 시간을 벌었다. 락커 문을 닫고 샤워실을 제대로 스캔해본다. 아니 샤워 부스가 무려 4개나 있잖아? 게다가 샤워 부스가 분리되어 있어서 혼자 쓰기 딱 좋은걸? 어차피 다닐 거 좋은 데서 오래 다니는 게 낫지 않아? 에고에게 잽을 날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에고를 쓰러뜨린 마지막 강펀치는 PT쌤의 몫이었다. 결제를 미루려는 내게 그녀가 속삭이듯 묵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희가 1월까지만 현금가 할인이 들어가는데, 오늘이 1월 31일이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