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당신에게
하고싶은 게 있을 때 바로 해버리는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하더라구요.
공부 좀 하죠?
이렇게 짧게 자르면 관리가 힘들다는 미용실 언니와 그래도 이렇게 잘라야만 하겠다는 나 사이의 팽팽한 접전은 미용실 언니의 빠른 포기로 평화롭게 일단락됐다. 미용실 언니는 실장이란 타이틀에 걸맞는 연륜으로 나의 고집을 간파하고는 이내 가위를 집어들었다. "드라이 할 때 뒷머리를 앞으로 밀어줘야 그나마 덜 뻗쳐요. 이렇게." 내심 걱정이 됐는지 꼼꼼하게 관리법을 알려주는 미용실 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있는 듯 했다.
무슨 일 해요? 학생?
어디가서 학생 소리를 들어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자유분방함을 뿜어내는 내 탈색머리 때문이었을까. "회사원이에요. 판교쪽에서 IT 회사 다녀요." 양파 껍질 까듯 한꺼풀 한꺼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는 어느새 미용실 언니의 과거에 서있었다.
"전 원래 웹 디자이너였어요. 거기도 클라이언트 상대하는게 완전 일이잖아요. 만들어서 가져가면 자기들 마음대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그럼 가독성이 완전 떨어지고. 나중에는 해달라는대로 일단 해줬어요. 수정 횟수는 정해져있으니까, 나중에 결국 제 말대로 수정하게 되면 저야 추가로 돈 더 받아서 좋죠- 이랬죠 뭐. 사람들은 결과물을 눈으로 보기전까지는 설득이 잘 안 돼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 치이는게 지치기도 하고 이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가 원래 의류, 패션 쪽 전공이에요. 예전부터 사람들을 외적으로 꾸며주는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쪽으로 여러개 알아봤어요. 네일을 할까, 메이크업을 할까, 피부 마사지를 할까, 헤어 쪽을 할까. 학원도 다니고 직접 체험도 해봤죠. 근데 제가 성격상 한 군데 오래 앉아있는 걸 잘 못해요. 동작도 크게 크게 하는걸 좋아하고. 그래서 네일이나 메이크업은 잘 안 맞았어요. 쪼그마한데다가 깨작거리는게 성에 잘 안 차서. 우연히 헤어 쪽을 하게 됐는데 저랑 너무 잘 맞는거에요. 그리고 웹 디자이너 할 때는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예민한 상태였어요. 항상 집중하고 있어야하니까 되게 피곤했죠. 근데 이 쪽은 제가 머리 해드리는 시간에만 집중하면 그 다음엔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것도 너무 좋더라고."
방향을 바꾸는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기준이 확실하셨네요.
"처음 미용을 시작할 때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친구들은 과장 달고 있는데 저는 완전 밑에서 새로 시작하는거니까, 내가 지금 뭐하는건가 싶기도 했죠. 그래도 일한 경험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배웠어요. 사실 여기도 사람을 상대하는게 주된 일이잖아요. 초년생들은 그런 부분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웹디자이너 하면서 하도 시달렸다보니까 여기서는 그게 너무 쉬운거에요. 제가 예전에 했던 거에 비하면 껌 수준? (웃음) 그래서 제가 1년차 때 10년차랑 똑같이 월급 받기도 하고 그랬어요. 우리는 자기가 하는 만큼 받으니까."
웹 디자이너로 고생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는 미용실 언니는 요즘 어디가서 이런 얘기 하면 노땅 소리를 들을 것 같다고 했다. "젊어서는 사서도 고생한다는 말이 요즘 사람들한테는 잘 안 통하는 것 같아요. 어떤 책에서 뭐라드라, 고생은 최대한 안하는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고생보다는 고생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뤄주지 않는게 더 문제라는 결론으로 미용사 언니의 과거 얘기는 마무리됐다.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짧은 단발로 변해있었다. 무겁게 달고 다니던 탈색 머리가 사라지니 개운한 상쾌함이 밀려왔다. 사고 싶으면 사고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으면 하고 있는 요즘의 나는 사실 알고있다. 이 모든 충동은, 진짜 중요한 결정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는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욕구 불만의 표출이라는걸. 미용실 언니의 연륜이 더욱 멋져보였던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살아온 발자취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대화가 던지는 묵직한 물음을 되새겨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을까? 그 누구도 아닌, 내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