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박자가 효율을 만든다
지난 편에서 러닝 이코노미를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엔진을 가지고도, 더 적은 에너지로 더 오래, 더 편하게 달릴 수 있는 능력.
달리기의 효율은 심폐지구력이나 근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디디고, 어떻게 튕기고, 어떤 박자로 반복하느냐도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이번 편은 그 박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케이던스와 리듬.
예전에도 리듬 훈련과 케이던스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벽을 넘기기 위한 훈련 팁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려 합니다.
왜 그런 리듬이 효율을 만들고, 왜 같은 몸으로도 더 편하게 달릴 수 있게 만드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면 대부분 한 가지에 집중합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페이스와 거리. 숫자로 측정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조금 오래 해보면, 숫자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박자입니다.
발이 땅에 닿는 리듬.
팔이 흔들리는 주기.
호흡이 맞춰지는 패턴.
달리기는 결국 반복 운동입니다.
그리고 그 반복의 속도와 질감이, 달리기의 느낌 전체를 결정합니다.
러닝 이코노미를 이야기할 때 케이던스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효율은 힘의 크기만이 아니라, 반복의 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케이던스는 분당 발이 지면에 닿는 횟수입니다.
보통 SPM(Steps Per Minute)으로 표시합니다.
한 발이 닿을 때마다 1로 셉니다.
양발을 합쳐 분당 170번이면 케이던스 170입니다.
초보 러너의 케이던스는 대체로 낮은 편입니다.
발을 크게 뻗고, 천천히 밟는 식으로 달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숙련된 러너들은 대체로 더 촘촘한 리듬으로 달립니다.
꼭 빠르기만 해서가 아닙니다.
리듬이 안정되어 있고, 불필요하게 크게 내딛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급 이상 러너들은 대체로 170대에서 180대 사이에 많이 분포하고, 엘리트 선수들은 그보다 더 높은 케이던스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리듬으로 달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리듬이 효율적인가입니다.
달리기 커뮤니티에는 오랫동안 회자된 숫자가 있습니다.
분당 180보.
이 기준은 잭 다니엘스가 올림픽 선수들을 관찰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 숫자를 절대 기준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모든 러너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과학 공식이라기보다, 엘리트 선수들에게서 자주 관찰된 값에 가깝습
니다.
키가 크거나, 다리가 길거나, 주력 거리와 페이스가 다르면 최적의 케이던스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180을 외워서 맞추는 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지금의 내 케이던스가 지나치게 낮아서
보폭이 과하게 길어지고,
착지가 몸 앞쪽으로 쏠리고,
달리기가 비효율적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를 보는 것입니다.
대개는 지금보다 조금만 높여도 차이가 납니다.
보통 5~10%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리듬과 충격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케이던스가 낮다는 것은 대개 발을 크게, 천천히 뻗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발이 몸보다 앞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이때 생기는 것이 일종의 브레이크입니다.
몸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착지는 앞에서 받습니다.
그 순간 충격이 커지고, 에너지 손실도 커집니다.
무릎이 펴진 상태로 지면을 강하게 받는 느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매 걸음마다 살짝 제동을 거는 것과 비슷해집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무릎과 발목, 정강이 주변에 부담이 쌓이기 쉽습니다.
반대로 케이던스를 조금 높이면 보폭이 자연스럽게 짧아집니다.
그러면 발이 몸 아래쪽에 더 가깝게 떨어집니다.
착지가 부드러워지고, 충격이 줄고, 흐름이 매끄러워집니다.
러닝 이코노미 관점에서 보면, 같은 힘으로 더 깔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케이던스를 높이는 것은 처음에는 꽤 어색합니다.
발을 더 빨리 굴리는 느낌.
평소보다 짧게 내딛는 느낌.
심지어 제자리에서 바쁘게 뛰는 것 같기도 하고, 속도가 오히려 안 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반응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아직 새로운 리듬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주 지나면 달라집니다.
몸이 그 박자에 적응하면, 같은 케이던스에서도 힘이 덜 들고, 호흡이 덜 흐트러지고,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메트로놈 앱이나 일정한 비트의 음악을 써도 좋습니다.
목표 케이던스에 가까운 BPM을 골라 그 박자에 발을 맞춰보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하게 올리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큰 폭으로 바꾸면 오히려 더 불편해지고, 종아리나 아킬레스에 부담이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바꾸는 것이 맞습니다.
케이던스가 안정되면 흥미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숨도 박자에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세 걸음에 한 번 들이쉬고, 두 걸음에 한 번 내쉬는 식으로
자기만의 호흡 패턴이 생깁니다.
이 지점부터 달리기는 단순히 힘으로 버티는 운동이 아니게 됩니다.
머릿속 소음이 줄어듭니다.
생각이 줄고, 발소리와 호흡만 남습니다.
몸이 리듬에 실리고, 리듬이 달리기를 끌고 갑니다.
달리기가 어느 순간부터 편안하고, 몰입감 있고, 이상하게 기분 좋은 운동으로 바뀌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러너들이 달리기가 좋아진 순간으로 기억하는 장면도 대개 이 지점과 겹칩니다.
속도만 오른 것이 아닙니다.
달리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입니다.
케이던스는 피로의 지표이기도 합니다.
달리다가 힘들어지면 발이 무거워집니다.
발이 무거워지면 동작이 늘어집니다.
그러면 보폭이 괜히 길어지고, 케이던스는 낮아집니다.
케이던스가 낮아지면 착지 충격이 커집니다.
충격이 커지면 몸은 더 빨리 무너집니다.
이렇게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힘들 때일수록 오히려 의식해야 합니다.
억지로 속도를 더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보폭을 조금 줄이고, 발의 회전을 조금만 빠르게 가져가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이미 힘든데 발을 더 빨리 움직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다릅니다.
짧은 보폭과 빠른 회전이 몸을 더 안정시키고, 리듬을 무너지지 않게 잡아줍니다.
결국 더 오래, 더 일정하게 달릴 수 있게 해줍니다.
피로할 때 폼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대개 이 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즘 GPS 러닝 워치 대부분은 케이던스를 자동으로 측정합니다.
러닝 앱 가운데서도 케이던스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기능이 있다면 가장 간단합니다.
실시간으로 보거나, 달리고 난 뒤 기록에서 확인하면 됩니다.
그런 기능이 없다면 직접 세어볼 수도 있습니다.
1분 동안 한 발, 예를 들어 오른발이 땅에 닿는 횟수를 세고 2를 곱하면 됩니다.
아주 정밀하지는 않아도, 지금 내 리듬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메트로놈 앱이나 일정한 BPM의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처음부터 박자에 발을 딱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스텝이 꼬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리듬으로 달려보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뛰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달린 뒤에 기록을 보고, 실제로 케이던스가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때 케이던스를 올리려면 보폭을 조금 줄여야 합니다.
보폭은 그대로 둔 채 발만 더 빨리 돌리려고 하면 금방 버거워집니다.
짧게 디디고, 빨리 떼는 것.
그 느낌이 잡히면 케이던스는 억지로 만드는 숫자가 아니라, 몸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됩니다.
처음부터 크게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보다 5~8 SPM 정도만 높여도 충분합니다.
케이던스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조절하는 일이 아닙니다.
달리기의 박자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리고 박자를 바꾼다는 것은, 달리기 자체를 다시 배우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잘 안 맞습니다.
괜히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반복하면 몸이 배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전 리듬으로는 오히려 못 달리겠는 시점이 옵니다.
그때부터는 달리기가 달라집니다.
더 조용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오래 유지됩니다.
러닝 이코노미는 거창한 이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작은 리듬의 변화가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이번 편의 핵심도 같습니다.
달리기의 리듬을 바꾸면, 달리기의 질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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