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영롱하게
폭죽처럼
느릿하고 일렁이게
아주 고요하다 못해 멀리 퍼지는 밤하늘
- 이 이상 검어지는 것은 무리야
빛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검은 밤
그 뒤로 사뿐하게 안겨오는 하얀 밤파도
포근하고 잔잔한 거품 사이로
춤을 추면 언제든 서로에게 미끄러질 듯
얇은 슬리퍼를 한 손에 들고
남은 손이 허전치 않게 검지 손가락을 가볍게 걸고 걸어볼까요
찰박이는 물소리에 발이 시리면 그 핑계로 언제라도 따듯하게 손을 잡을 생각입니다
랜턴을 요리조리 비추며 밤을 쫓고
밤이 흘린 어둠을 빗자루로 애써 쓸어내어
너를 맞이하는 야자수 한그루 무성한 바다
그런 내가 머쓱하게 밤조차 달아나는 환하디 환한 너가 거기에 있고
달은 비추고
별들은 터지고
모래는 달콤하게 녹아내리고
그래요 너 이후로 모든 것들에게는 심장이 있군요
사방에서 동동 깊이 울리는 그 소리에 잠기면
유유하다 못해 너무나 느려
걷는다는 말 보다 서있다는 말이 어울리는 내가 있습니다
텅
그새 제 아름다움을 참지 못하고 봄피듯 타오르는 지금 이 불꽃 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들을 해맑게 전하고 퇴장하는 희극 조연배우가 읊는 요란한 서막입니다, 서막이 지나면 눈앞에 펼쳐질 그 화려한 축제가 나에게만 텅하고 남는다면 무척 초라하겠군요
나는 탐스럽지 못하여 슬프군요
너는 빛난 적 없어서 슬프군요
나는 소중한 것이 없어서 슬프군요
너는 소중한 것이 있어서 슬프군요
그래서 내가 선 밤바다가 너무 무섭겠군요
이 사연에 하늘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감탄하는군요
지금 마치 언제든 진눈깨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4년에 하루 더 돌아온다는 29일 그 하루에 결국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거 봐요,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주어진 대도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던 내 말이 맞았잖아요 기억하지 못하겠지마는. 소중함이라는 것 뭐 그리 중요하나요.
바짝 마른 가로수와 무심하게 검은 아스팔트. 그저 익숙한 도시의 밤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엇이 얼마나 지켜지겠습니까.
잠시 어두운 밤에게 너무 매정하군요. 낯선 밤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봅시다. 떨어지지 못하고 바짝 시들어져 매달린 잎들에게 가로등이 켜지면 그곳은 이제 떨어지지 않는 벚꽃이 밤새도록 흔들리는 봄날입니다. 그 봄빛이 짙은 아스팔트에 간간히 흩어진 유리 조각을 비추면 그곳은 이제 휴가를 떠난 첫날 루프탑에서 맥주캔 따는 소리와 함께 마주친 은하수가 황홀한 여름밤의 풍경입니다.
여기 걸음마다 바다가 있습니다. 꼭 잡아줄게요 내가. 그러니 한 발 걸어봅시다. 지금 낯선 이 바다를 아주 조금씩 걸어간다면 이곳에는 달도 뜨고 해도 뜰 겁니다. 파도도 매일 찾아올 거고 별이 흐리면 모래가 더욱 반짝일 겁니다. 내 말이 맞을 거예요. 어느새 신이나 살랑이는 검은 머리칼과 하얀 손끝에서 튀어나가는 보석 같은 물방울이 보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화사한 여름의 밤바다 그 자체보다 더욱 그 자체인 너가 보입니다. 아아 이보다 아름다움은 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밤바다가 보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