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릭 Oct 09. 2022

땅콩 Z 작전

중성화를 해도 될 거 같은데요?

개껌을 씹지 않고 "꼴딱" 삼키는 바람에 소화불량에 걸려 토를 하는 쭈니의 치료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쭈니의 "땅콩" 제거 허가가 떨어졌다!


"이 약 다 먹이고 상태 좋아지면 수술하죠. 내원하기 전에 전화 한번 주세요."


사지를 붙잡혀 찍힌 엑스레이와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파고드는 아픔이 이질적이었던 피검사 때문에 잔뜩 겁에 질려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있는 쭈니를 달래는데 묘한 기분이 나를 파고들었다.


새끼를 낳을 계획이 없는 반려견들은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한다.

암컷의 경우, 1년에 두 번 정도 생리를 하는데 혈흔을 꽃잎처럼 남기고 다녀서 꽃도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내견의 경우 그런 꽃도장이 집안 여기저기 찍히는 것에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생리 중 호르몬 분비의 증가로 인해 발정에 의한 가출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수컷의 경우는 역시 집안 여기저기에 마킹(영역표시)을 하는 문제가 생긴다. 수컷 또한 호르몬에 의해 변화를 겪는데 공격성이 강해지거나, 발정에 의해 가출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성화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반려견들의 건강 때문이라고 한다.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암컷은 나이가 들면서 자궁 축농증과 유선염, 유선암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고, 수컷 또한 전립선 질환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라 한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수술이지만, 망설여지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건강한 아이의 몸에 마취를 하고 칼을 대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라는 뉘앙스에 나는 순응되고 말았다.


일주일 뒤,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수술 예약을 했다.


다음날 수술을 하려면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해야 한다 해서 저녁을 먹이지 않았더니 쭈니는 한참 까까를 찾고 앙앙 짖어대며 나를 괴롭히다가 배고픔에 지쳐 잠이 들었다.

누워서 쩍벌한 채 잠든 쭈니의 배를 살살 쓰다듬다가 문득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콩과의 마지막 기념사진

세상모르고 잠든 녀석 몰래, 나는 내일이면 영원히 안녕을 고해야 할 땅콩과 녀석대신 이별의식을 치렀다.




"남자아이들은 쉽게 끝나요. 개복수술이 아니라 살짝 째서 꺼내면 되는 거라. 문자 드리면 그때 오세요."


마취하고, 수술하고, 복하는 과정이 넉넉잡아 두 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는 보충설명을 듣고 쭈니를 선생님 품에 인계했다.


"엄마 조금 있다 올게?"


까맣고 맑은 눈망울이 당황의 빛을 가득 담아 나를 응시했다.


쭈니 수술 끝났습니다.


두 시간이 훌쩍 넘어 세 시간에 가까울 무렵 병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얼른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겨우 100미터 정도 거리의 병원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데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유난히 안 바뀌는 기분이 들면서 초조해졌다.

병원을 들어서자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쭈나, 엄마 왔네."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을 따라 입원실에 들어섰다.

마취가 덜 풀린 쭈니는 "엄마"라는 소리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달려지지 않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다가왔다.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떠는 쭈니를 느끼고 있는데,


"마취가 잘 안 깨는 체질인가 봐요. 마취 깨는데 고생 좀 했어요, 쭈니가."


섬뜩한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하마터면 쭈니가 잘못될 뻔했구나!


자신이 겪은 고초에 대해 한탄하듯 낑낑 울어대는 쭈니를  다급한 손길로 꼭 끌어안았다.



집으로 돌아온 쭈니는 마련해 둔 방석에 앉으면서 날카롭게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 녀석을 우쭈쭈 달랜 후, 나는 부엌으로 가서 공복에 배고플 쭈니를 위해 맛있는 유동식 맘마를 준비해 방으로 돌아왔다.

땅콩을 잃은 쭈니는 귀가 후 2시간 정도 기운이 없었다.


기운이 없다기보다 망연자실하달까?


녀석에게 몹쓸 짓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질 때쯤,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슬며시 올라온 쭈니가 내 발치에 자리 잡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옆으로 다가와 이불을 콧등으로 쿡쿡 찌르며 열어달라 재촉했다.

이불을 가만히 열어주자 옆구리로 파고든 쭈니는 곤히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든 녀석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내 결정이 부디 녀석에게도 좋은 일이었길 다시 한번 기도했다.




노심초사했던 첫 번째 중성화 수술의 기억에 겁이 났지만 나는 차니 또한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차니를 수술실에 들여놓고 걱정의 시간을 보내던 나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마취에서 헤롱 거리고 있을 차니 걱정에 한달음에 달려들어간 병원.


거. 기. 엔.


차니가 친구들과 쫓고 쫓기는 놀이를 하면서 병원 로비를 질주하고 있었다.


"선생님, 차니 아직 수술 안 한 건가요?"

"아뇨, 잘 끝났어요."


그제야 나를 발견한 차니는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겨 뽀뽀를 해댔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땅콩 뗀 자리에 밴드를 붙이고 신이 난 발걸음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차니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케바케 : 케이스 바이 케이스

개바개 :  개 바이 개


나의 "개바개"는 참 버라이어티 하다.


덕분에 나의 "멍멍이 육아생활"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전 05화 전지적 차니 시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