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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Oct 06. 2022

의(誼) 좋은 형제

쭈니와 차니는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다.

쭈니는 소파 밑, 책꽂이 사이, 침대 프레임 아래 등 주로 작고, 좁고, 끼이는, 밀폐되고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차니는 그와 영 다르다.

하네스나 옷으로 몸이 조여지면 석고상처럼 굳어버리고, 사방이 막힌 켄넬에 들여보내려 하면 격렬한 저항 끝에 도망가는, 폐소공포증이 의심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차니 6개월 이후로는 쭈니와 차니가 한 자리에서 함께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차니가 나와 놀고 있는데 쭈니가  다가오면 차니는 자리를 피한다.

쭈니가 내 품에 안겨 이쁨 받고 있을 때 차니가 다가오면 쭈니는 앙칼지게 짖으며 차니한테 경고를 날린다.


맘마도 각자 다른 공간에서,

까까도 각자 다른 자리에서,


그것이 쭈니와 차니 둘의 암묵적인 룰(Rule)인지 꽤나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의 성향과 의견을 존중한다.

하여 나 또한 성실히 룰(Rule)을 지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간만에 운동을 실행했던 그날,


거실 실내 바이크를 질질 끌어 TV 앞에 놓고 리모컨으로 운동하면서 볼 프로그램을 신중히 골라 틀어놓은 후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페달을 돌리는 발을 따라 겅중겅중 뛰면서 방해를 하던 차니는


"찬아, 새 어딨지?"


한마디에 창가로 후다닥 달려가서 새를 찾느라 코를 벌름거리며 집중했다.
차니의 방해로부터 벗어난 발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으며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였다.   


빠르게 10분, 느리게 5분.


나름의 규칙으로 페달을 돌리다 보니 송골송골 맺히던 땀이 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굽어있던 허리를 펴서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만세를 하고 죔죔 죔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굳어진 관절을 풀었다.

다시 허리를 굽혀 자전거 핸들을 잡다가 눈앞에 마주한 어떤 광경에 강하고 빠르게 구르던 페달에서 힘을 빼 조용히, 천천히 굴렸다. 그리고 쭌차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핸드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아니, 우리 앞에서는 소가 닭 보듯 무시하더니 이 다정함을 무엇인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해가며 핥아주고 받아주고.

털끝만 닿아도 성질부리고 난리더니 지근거리에서 코를 맞대고는 눈곱까지 떼먹어 주면서 부비적하는 애정질이 포근하다 못해 따수울 지경이었다.


풋!


참지 못하고 삐져나온 웃음소리에 쭈니와 차니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곧장 카메라 렌즈를 발견한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자리로 스르르 사라졌다.


남편이 어린 시절, 시아버지께서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이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 남몰래 잠이 든 아이들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시다가 인기척이 들릴라치면 후딱 몸을 돌려 앉으셨다 다.

평생 선비같이 점잖으셨던 아버님의 잔잔한 애정표현이었다.


녀석들의 애정표현이 둘만의 순간에 온전히 표현되는 걸 보면서 나는 아버님을 떠올렸다.

어린 남편의 잠든 이마를 가만가만 쓰다듬는 순간을 내 눈에 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본듯한 그 순간은 아마 의(誼) 좋은 쭌 차니의 순간과 비슷한 공기이지 않을까 싶다.


내 새끼들, 많이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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