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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Nov 03. 2022

수컷 다섯, 암컷 하나

너는 아직도 양기가 부족하냐?

평생지기 친구는 말 끝에 궁금증이 아닌 놀림을 묻혀 물었다.

안방 장판 위를 내 엄지 손가락 만한 길이의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차니를 눈으로 좇던 나는 친구의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나는 양기가 가득한 환경 속에 산다.


남편(♂), 1호(♂), 2호(♂), 첫째 멍멍이 쭈니(♂), 둘째 멍멍이 차니(♂)


내가 가정을 이루면서 제일 첫 번째로 가지게 된 양기는 남편이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선 그때, 어떤 소리랄까, 메시지랄까?.. 그런 것이 내 머릿속에 음성처럼 퍼졌다.


어쩌면 저 사람이랑 결혼할지도 모르겠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누구나 인정할 잘생김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것이 어이가 없어서 헛헛하게 웃고 넘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동행하던 지인에게 말했더니 진짜 어이가 없었는지 만원의 지하철임을 잊고 큰소리로 웃었다.

어찌하다 보니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에 이르렀다.

 

후에 남편은 내가 그에게 첫눈에 반한 거라며 으스댔다.

그땐 부정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이끈 마음이 그에게 닿아 애정의 씨앗을 틔웠을지 모를 일이다.




그와의 결혼 생활이 2년쯤 접어 들 무렵, 우린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 자궁외 임신과 응급 수술 등으로 아이에 대한 욕심을 어느 정도 접었더랬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아이와의 인연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었던 어느 날, 뜻밖의 인연이 나에게 찾아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가열차게 놀고 온 다음 날, 나는 약간의 하혈을 했고 몸이 안 좋아졌다.

며칠 후 뭔가 다름을 느낀 나는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사 와달라 요청을 했고, 검사 결과는 임신이었다.


멍하고, 떨리고...


우리는 지인과 함께 LA 다저스 구장에서 박찬호 경기를 보며 임신 축하파티를 했다.


악어 태몽과 함께 태안에서 씩씩하게 자란 1호는 8개월 후 GOOD SAMARITAN HOSPITAL에서 손등 파란 반점을 보여주며 내 품에 안겼다.

내가 가지게 된 두 번째 양기였다.





1호의 돌잔치를 마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언젠가 느껴보았던 듯한 몸의 불편함에 병원을 향했다.


초음파에 찍힌 작고 까만 점 한 개.


2호는 그렇게 존재를 알렸다.

내심 딸이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과 그래도 아들이 좋다는 시부모님의 생각이 기대라는 기분 좋은 감정으로 얽혀 집안은 따스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8개월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산모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따끈하게 데워진 초음파 젤이 배 위에 도포되었고 그 젤 위를 초음파 기계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고환 보이시죠? 아들이네요.


느닷없이 훅 들어온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당황했다.


아들이에요?


모니터로 향한 내 시선에 맞춰 의사 선생님은 고환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셨다.

초음파를 확인하는 동안 내 마음은 딸이 아니라서 아쉬울 틈도 없이 설렘으로 가득 차올랐다.

어미가 건강하게 품어주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심장수술을 받느라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며 고생했던 2호는 많이 따스한 양기로 내 곁에 있다.  




예쁜 엄마 슈나우저 밑에서 제일 예쁘게 태어난 쭈니는 처음 본 내게 강하게 애정표현을 하며 나를 간택하는 바람에 나의 3호 아들이자 세 번째 양기란 존재로 내 곁에 있다.


바닷바람이 거센 인천에서 태어나 작은 몸뚱이에 더 작은 꼬리를 한 채 4호 아들이 된 차니는 늘 묵묵하고 배려있는 모습으로 쭈니와 트러블 한 번 없이 잘 지내다가 생사의 기로에 서는 큰 병을 앓기는 했지만 결국 다 이겨내고 네 번째 양기로 든든한 내 새끼가 되었다.


쭈니와 차니는

아프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혼날 일도 많이 하지만 예쁜 짓을 더 많이 하며 나를 살게 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친정 엄마는 사람 아들 둘에 강아지 아들 둘을 둔 나에게 말씀하셨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냐?

아들만 둘을 둔 엄마들의 메달은 목메달이라나?


그건 딸 셋에 아들 하나만 둔 엄마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세상엔 케바케라는 게 존재한다.

나에게는 딸보다 더 따스운 아들이 있고, 친구보다 더 잘 맞는 아들이 있다.

그런 아들들을 한 번 키워보시라.

그들이 주는 배려와 위로와 든든함이 얼마나 좋은지 아마 상상도 못 할 정도일 것이다.

거기에,

어미가 울면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핥아 주는 강아지,

어미가 잘 때면 묵묵히 곁을 지키며 온기를 나눠주는 강아지와 함께 살아보시라.

어쩌다 보니 그들 또한 양기 가득 머금은 수컷이지만.

나는 그 둘 덕에 힘겨웠던 시절을 버티고 살 수 있었음에 한 없이 감사하다.




우리 집 구성원은 수컷 다섯, 암컷 하나다.


유일한 암컷인 나는 다섯 수컷의 사랑을 받으며 오늘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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