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같지 않은 날씨에 겨울이 어디 도망간 건 아닐까 걱정하던 나에게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노래하듯 하얀 눈이 내렸다. 창밖을 보며 강아지처럼 좋아라 재빠르게 옷을 입고 나갔다.
눈 입자가 제법 컸다. 시력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눈의 결정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서울에 이사와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겨울마다 원 없이 하얀 보석 같은 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는 눈 없는 겨울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내리는 눈을보며 책을 읽고 싶어 창이 있는 카페 '빨간 지붕'으로 향했다. '빨간 지붕'은 동네에서 애정 하는 카페 중 하나인데 눈이 와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카페에 흐르는 잔잔한 팝송은 어린 왕자와 함께 여행을 즐기기에 딱이었다.
<어린 왕자>는 매년 해가 바뀌기 전 읽는 책이다. 나와 처음 친분을 맺는 사람들은 내가 연말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하면 왜 같은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고, 읽을 때마다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달라져서라는 이유일 뿐. 한 해 한 해 그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변하다 보니 마음에 꽂히는 부분도 달라진다.
바리스타분이 책 커버의 색을 알기라도 한 걸까? 라테 잔이 책 커버와 같은 빨강 계열이다. (개인적으로 잔의 빨강이 더 마음에 든다.)
창밖을 바라보며 라테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며 그렇게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밖으로 나가니 통나무 의자에 눈이 얇게 내려앉아있었다. 카페 앞마당에는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고구마를 구워, 호호 불며 먹으면 더없이 행복할 듯하다.
카페에 갈 때만 해도 신이난 강아지처럼 눈을 맞으며 뛰어다녔는데 집에 돌아올 때는 추워서 버스를 타야 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눈이 소복이 쌓여있기를.이번에는 눈 속을 폭삭폭삭거리며 걷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