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Jan 30. 2020

나이 들어간다는 것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고, sns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읽지 않았고, 심심하면 찍어대던 셀카도 마찬가지다. 꼭 해야 하는 것만 하고, 모든 것은 '그대로 멈춰라'가 되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멈추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는 것에 시간 아까워하던 내가, 며칠 동안 티브이에서 방영해주는 예능과 영화를 계속 봤다. 나름 재미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시간도 잘 갔다. 밥 먹고 잠깐 티브이를 보면 또 밥 먹을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잘 간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살면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있어 본 적이 없어서인지 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벌써 새해의 첫 달이 끝나가고 있다. 새해에 새로운 다짐을 해보지 않은 것도 처음이고, 새해 첫 달, 별 계획 없이 이렇게 보내본 것도 처음이다. 항상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려 노력하고 빠듯하게 살았는데, 어느 정도 살다 보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니 왠지 다 늙은 사람 같지만, 중년이라면 중년인 사십이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쉴 새 없이 움직인 시간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 실상 이 둘을 보면 하루, 이틀은 별 차이가 없다. 일주일, 이주일도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 두 달부터는 다르겠지. 일 년, 이 년은 더 그럴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쉴 새 없이 계속 일하고 싶지는 않다. 뭔가를 바라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어떠한 일을 마주할 때 열정이 사라졌다거나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일에 쫓겨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어릴 때는 계획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준비성 없어 보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태하다 여겨졌었다. 사실 그것이 다 옳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는 뭔가 목표를 정해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보다,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하다 보면 어느새 완성된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가 들어서이기에,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나지 않은 여행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