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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Apr 10. 2020

사투리의 매력

"딸~ 저것 좀 디비 봐~"

"응?"

"저거! 햄 좀 디비봐라고."

"디비???"

"어. 햄 디비라고."

"무슨 소리야~."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이 아이가 디비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다. 아들은 그나마 6살 때까지 부산에서 살아서 사투리를 꽤 기억하지만 딸은 4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오다 보니 기억하는 사투리가 많지 않았다.

"혹시, 너 '디비'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라고 물으니 바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는 다시 햄을 뒤집어 달라고 말하고는 웃으며 다른 반찬을 준비했다.


아들, 딸과 사투리에 대해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말들이 너무 많다며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말들이었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투리가 정말 외국어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한다.


처음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사투리로 인해 웃지 못할 상황들도 많이 일어났다.


서울로 올라온 시기가 겨울이라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에게

"담이 들어간 바지는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라고 물어보니

"바지에 담이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어요?"

하고 되물어왔다. 이 분은 집 마당의 담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아! 서울에서는 뭐라고 말하지?? 적절한 단어를 몰라 찾아본 결과 기모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때 간식으로 '전'이 나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찌짐 먹을 사람 있어요?"

라고 물었다. 한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무도 찌짐 안 먹을 거예요? 맛있는데..."

그때 한 어린이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선생님, '전'을 영어로 '찌지~임'이라고 하는 건가요? 그런 거면 저 먹을래요."

아풀싸... 찌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아이들이 눈에는 '전' 혹은 '부침개'라고 하는 것이 보이는데, 영어 선생님은 '찌짐'이라고 하니 저것을 영어로 찌짐이라고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아이들에게 찌짐은 사투리라고 말해주고 영어로는 Korean Pancake 혹은 Korean Vegetable Pancake 정도로 부르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사투리와 표준말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지만 처음에는 울면서 사투리를 고쳤다. 목동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사투리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유치원의 입장이었다. 일반적인 부산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하는 편이었고, 집에서 세 자매가 이야기를 하면 옆집에서는 싸운다고 생각할 정도로 억양이 강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사투리 못 고칠 거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한 달 만에 울면서 고쳤다. 안 그럼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려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뭐하랴. 밖에서는 표준말, 집이나 친정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특히 친정에서의 표준말은 영 어색하다.  


사투리는 매력적이다. 편안하고 정겹고, 누룽지로 끓인 숭늉처럼 구수하다. 또한 한 마디로 억양을 달리하여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낼 수 있기에 다재다능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가 좋다. 사투리와 표준말. 두 가지를 다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사투리라는 주제로 예전에 끄적한 시가 있어 여기 마지막 부분에 올려본다.


시골 나라 말

-마음 그리는 여자-


우리 할머니는

시골 나라 사람

통역관은 우리 엄마


고마 됐다.

고구마가 다 됐다고?

아니 아니

그만 됐다고


개안나?

개를 안을 수 있냐고?

아니 아니 괜찮냐고


쑤그리봐라

쑥을 봐라고?

아니 아니

숙여보라고


매번 들어도 새로운

시골 나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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