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모든 게 그저 신의 뜻일까

by 조 뫼르소

영화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외곽 도로에서 시작된다. 아내와 딸을 태우고 운전 중이던 남자는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들개를 치게 되고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개의 사체를 길 밖으로 치운다. 이를 본 남자의 딸이 아빠가 개를 죽였다며 분노하고 슬퍼하자 딸의 부모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며,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 말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이 사고로 한밤중 차가 멈춘 남자는 급히 근처에 있는 정비소를 찾는다. 정비소에서 일하는 ‘바히드’는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이상하리만큼 긴장하기 시작한다. 바히드는 이 낯선 손님과 마주치기를 꺼리며 멀찍이 떨어져 대화를 이어가는데,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직원에게 답답함을 느낀 남자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둘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남자의 의족에서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긴장하던 바히드의 얼굴은 일순 분노와 증오로 뒤덮인다.


수년 전 노동 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던 바히드는 당시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고문했던 사람이 방금 정비소를 찾은 이 남자라고 확신한다. 고문 내내 시야를 차단당했던 바히드는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그의 목소리와 의족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충동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혀 그를 미행하고 납치하기에 이른다.


도시 외곽에서 납치한 남자를 산 채로 묻어버리려는 그때, 남자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 고문자가 아니며 다리도 얼마 전에 사고로 인해 다친 것’이라며 절규한다. 그의 말에 바히드는 자신의 확신이 점차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바히드는 자신과 함께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은 조각 진 기억을 공유함과 동시에 공통된 욕망을 확인한다. 바히드가 납치한 남자는 고문자 ‘외발이 아크발’이 맞을까.

영화는 국가의 체제 아래 고통받는 국민의 실상을 트라우마, 정체성, 정의 등의 요소를 통해 탐색한다. 체제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개인이 진실과 정의를 확정하기 어렵게 하고 이러한 사건들은 과거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여전히 일상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이란 영화의 거장 자파르 파니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시드니 영화제 작품상,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과거 수감과 고문 경험 등 자전적 요소를 영화에 현실성 있게 담아냈다. 정부의 허가 없이 비밀리에 촬영한 부분을 영화에 포함하는 등 영화 자체가 체제에 대한 저항임을 나타낸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풀어가는 서사 구조의 예술성 또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한 사건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긴장감을 높이며 최종 갈등 지점에서 반전과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이야기 형식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한 사회의 균열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동시에, 영화가 정치적·예술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또, 전 세계적으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는 1일 정식 개봉했고, 경남에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예술영화관 ‘씨네아트 리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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