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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Apr 28. 2022

꽃피 한 잔

봄 아침 베란다 의자에 앉는다. 앞동을 환하게 밝힌 햇살이 외벽에 반사되어 우리 집 유리창을 은은하게 비춘다. 창을 여니 신선한 공기가 들이닥친다. 초록이들은 곧 마실 나올 해님을 기다리느라 창밖을 향해 목을 빼고 있다.


구석으로 밀어 놨던 화분 하나를 베란다 제일 명당으로 옮겼다. 마른 흙만 덩그러니 남아 가끔 생각날 때만 물을 주던 화분이었다. 언제고 치워야지 하던 애물단지 중 하나였다.


며칠 전 다른 화분에 물을 주다 뜬금없이 핀 꽃을 발견하고 심장이 두둥ㅡ 둥 울렸다, 베란다 정원사가 무심한 중에도 구석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꽃대를 올린 거다.

이런 조건에도 이런 시선에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외치며 보란 듯이 꽃잎을 펼친 거다. 여린 줄기 끝에 매달린 작은 꽃은 기어코 피어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이런 화분을 구석에 두다니.


야무진 세 장의 꽃잎을 데칼코마니로 마주 찍은 꽃.

맞붙은 꽃잎을 펼치면 빠알간 점이 점 점 점.

테두리를 물들인 바알간 색을 끌어모아 찍었나 보다.


애기범부채의 강단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무도 기대도 주목도 하지 않는 외로움과 척박함 속에서도 자신의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강인하고 똑 부러진 꽃을 고고하다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피워낸 여정이 멋들어 꽃을 귀하게 받쳐 들고

꽃피 한 잔 마신다.

달다.


애기범부채  photo by duduni
꽃피 한 잔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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