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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y 05. 2022

하늘만 쳐다보는 할머니_구름 추적자 2

짧은 이야기

눈을 뜨자 한숨부터 흘렀다. 그날이 그날인 날이 다시 밝았다.

할머니는 텅 빈 마당으로 나갔다. 금방이라도 바둑이가 달려올 것만 같았다. 떠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바둑이의 헥헥 대는 숨소리가 생생했다. 마당 텃밭에서 당근을 뽑았다. 토끼장으로 가 문을 열려다 멈칫했다. 길게 새어 나온 숨이 철망 사이로 빠져나갔다. 토끼장 철망 위에 당근을 털썩 올려놓았다. 촉촉한 흙이 주인 없는 토끼장으로 부스스 떨어졌다.


무너지듯 평상에 주저앉았다. 굽은 등이 더 휘어졌다. 새가 지저귀었다. 새소리는 점점 다가왔다. 할머니 눈에 생기가 돌았다. 푸드덕대며 감나무에 내려앉는 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눈꼬리가 처졌다. 잠깐 반짝이던 생기는 그대로 여위었다.

"할머니, 잘 주무셨어?"

옆집 이장댁이 밭일 가는 차림을 하고 대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색을 살피는 티가 역력했다. 할머니는 눈을 한번 끔뻑였.

"이제 기운 차리셔야지. 할아버지 사십구재도 지났는데."

반응이 없자 이장댁은 신소리를 덧붙였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으셔? 살아계실 때는 지지리 다투시더만 그게 다 사랑싸움이었나 보네?"

애쓰는 게 고마워 할머니는 피식해 주었다. 그제야 이장댁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감나무로 눈을 돌렸다.

"어제부터 짹짹이가 보여. 어디 잡아먹힌 거 아닌가 모르겄어."

"에유, 바둑이에 토끼에 짹짹이까지 웬 줄초상이....."

제풀에 놀란 이장댁이 제 입을 톡톡 두드려댔다.

"할머니, 아침 잘 챙겨 드셔. 저 일 나갔다 와요."

할머니는 손을 훠이 훠이 저었다. 그러고는 공허한 눈으로 내내 앉아있었다.


이장댁은 팔짱을 끼고 할머니 집을 건너다보았다. 앞집 새댁도 나란히 서서 마당을 서성이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저러신 지 며칠 됐죠?"

"삼일째야. 저러고 하늘만 쳐다보신다니까. 허리도 안 좋으신 양반이 왜 저러시는지 참...."

"헉! 저기, 저 웃으시는 것 좀 봐! 하늘 보고 혼자 막... 어떡해!"

새댁이 발을 동동거렸다. 이장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한숨을 푹푹 쪄냈다. 새댁이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속살거렸다.

"혹시.... 아니겠죠?"

"쯧! 아서! 뱉는다고 다 말인 줄 알아!"

"아니, 저는 걱정돼서 그러죠. 하루 종일 하늘 보고 웃기만 하시니까. 거기다 혼자 뭐라고 막 중얼거리신다고요."

차마 입 밖으로 낼 순 없었지만 두 여인의 눈은 올 것이 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팔짱 안에 가두고서 애꿎은 팔뚝만 뜯어댔다.


할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벙싯벙싯 웃음도 지었다. 얼굴이 더없이 환했다.

"그래, 잘 지내는 거여?"

할머니가 바라보는 하늘엔 구름이 떠있었다. 구름은 집 상공을 에워싸고 몽실몽실 피어났다. 할머니는 첫눈에 알아보았다.


<바둑이>  photo by duduni


<짹짹이>   photo by duduni


<토끼>   photo by duduni


<할아버지>   photo by duduni


바둑이와 토끼가 뛰어오고 짹짹이가 날아왔다.

"할머니, 우리 잘 있어요! 여기 정말 재밌어요!"

뒤이어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

"허허허, 이 녀석들이 쫓아다녀서 쉴 틈이 없네. 당신, 이제 우리 생각 그만하고 재미나게 살아. 나는 요 녀석들하고 잘 놀고 있을 테니까, 우리 한참 후에나 다시 만나세. 허허허허."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서, 해사하게 웃음을 띤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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