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하차감, 꽃은 운반감
아무도 안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 꽃수업 아이템에도 적용된다. 부자재 값이 소형 15,000원, 대형 22,000원이라 타산이 맞지 않는다. 완제품은 10만 원 대일만 하다.
작년부터 인기 많은 아크릴백. 투명한 삼각 모양의 아크릴 가방만으로도 이미 독특해서 "와 이런 건 처음 봤어요!"라고들 좋아한다. 장점이 3가지 더 있다. 모든 꽃이 잘 보이기에 웬만하면 풍성하고 예뻐 보인다. 유니크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고 아크릴이 반짝이기에, 내가 늘 강조하고 신경 쓰는 '운반감'이 뛰어나다. 운반감이란, 꽃을 집까지 들고 가는 동안 받는 관심과 부러움을 뜻하는, 내가 만든 신조어이다. 차는 하차감, 꽃은 운반감.
기업동호회에서 아크릴백 수업을 했다. 회사지원금에 개인부담금까지 보태서 더 고급꽃을 사용해 달라고 하는 곳이기도 하고, 오래 함께 했기도 하지만, 이분들을 편애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편애 좀 해도 되지 뭐.
이 편애의 이유는 명백하다. 주차장에서 수업장소까지 늘 4명이나 내려와서 운반해 주고 마치고 다시 갈 때도 꼭 함께 한다. 보통은 혼자 운반하고, 담당자도 나도 그걸 당연히 여긴다. 그 마음이 고맙고 짐이 많아도 부담되지 않아 이것저것 가져온다. 짐을 내릴 때부터,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 동안도 이미 오늘 꽃도 너무 예쁘다고 열 번쯤 말해주니 힘이 난다. 가져간 샘플을 꺼내면 다들 "꺄아악~" 하고 돌고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흔치 않은 고급꽃을 알아봐 주는 안목까지. 편애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뒷정리도 다 함께 휘리릭 끝내서 내가 할 게 거의 없다.
사장님과 직원들의 사이가 좋아 보이는 가게를 좋아하는 나는 이 회사 분위기가 화목해서 마음이 편하다. 직원들의 사이가 좋은 건 물론, 대표님이 문을 쓰윽 열고 꽃이 참 예쁘다고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해주신다. 전무님이 수업에 스스럼없이 참여하시며 커피와 샌드위치를 쏘기도 하신다. 남자직원분들도 늘 수업에 함께 하신다.
이렇게 좋은 점을 나열하게 되는 까닭, 혹시 눈치챘을지? 반대의 경우도 종종 겪기 때문이다. 꽃쌤도 프리랜서라, 어디 가서 말하지 않는 숨겨둔 과거 정도는 꽤 있다. 힘든 회사 다니다가 배려해 주는 회사를 다니면 작은 것 하나하나 감사하게 되는 것처럼. 이 마음, 겪어본 사람이 나뿐일까.
수업 일주일 전부터 준비에 돌입한다. 아크릴백에 붙일 스티커 문구를 요청해서 주문하고, 대형 아크릴백은 파는 곳이 많지 않으니 품절되기 전에 사다 둔다. 리본은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와 흡사한 색상과 모양으로. 수업할 때 리본 선택 이유를 풀어놓으면 좋아하시겠지? 플로랄폼 같은 부자재들도 미리 준비해 둬야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크릴백 사진을 수십 장 검색해서 괜찮은 것을 고른다. 이과생 플로리스트는 그 사진이 괜찮아 보이는 이유, 그중 적용할 것도 정리한다. 면적이 크지 않은 상품은 컬러톤이 한두 가지 여야 예쁘다. 안전하게 한 가지 톤으로 갈까, 두 가지 톤으로 갈까 고민한다. 블루 7:보라 3 또는 오렌지 7:피치 or연핑크 3 두 가지 안을 최종선택한다. 각각의 경우 살 꽃도 우선순위에 맞춰 적어둔다. 물론 늘 꽃시장에 가면 그날 그 꽃의 컬러톤, 가격, 신선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3일 전부터 스칸디아모스를 준비한다. 사진에서 맨 아래에 깔아 둔 연핑크 이끼다. 이게 자연이끼이다 보니 온갖 잎사귀와 섞여있어서 다듬는데 나물보다 오래 걸린다. 대개 진초록 이끼로 쓰지만, 이끼색이 너무 진해서 꽃과 분리되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게 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이렇게 또, 눈이 견딜 수 없는 것보다 손이 고생하는 것을 택한다.
안목의 높이와 준비 시간은 이렇게 또 비례한다. 스칸디아모스를 쓴 사진은 한 번도 못 봤지만 보면 볼수록 잘한 선택이다. 꽃은 시들어도 이끼만 모아서 컵에 담아두면 스스로 습도를 조절해주기도 하니, 이과생 플로리스트는 기능성까지 잡는다.
드디어 전날, 꽃시장에 간다. 한 바퀴 돌아보니 역시 블루보라톤으로 만들만한 꽃이 괜찮다. 풍성하게 채울 수국이 1순위. 수국만으로 메우면 꽃이 둥둥 떠보이니 사이사이에 공작초가 있어야 한다.
2순위는 클레마티스. 이 꽃이 있느냐 없느냐는 드라마에 여주인공이 있고 없고만큼 다르다.
큰 꽃이 있어야 하는데, 장미처럼 두께가 있는 꽃은 작은 것만 꽂을 수 있다. 앞뒤 두께도 줄기도 가는 스카비오사가 딱이다.
보라만으로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시폰 커튼처럼 투명한 델피늄이 있어야 한다. "이 꽃이 있으니 확실히 예쁘네요!"라고들 해서 뿌듯했다.
여기까지 샀으면 이제 총액 계산. 예산에서 빼면 다른 꽃을 살 수 있는 금액이 나온다.
하늘하늘 들꽃느낌을 더할 이베리스는 조금만. 강렬한 포인트가 될 킹델피늄을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 포인트인 파알륨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겟! 샘플을 만들고, 꽃을 다듬는다.
가장 큰 작업이 남았다. 바로 아크릴백 보호필름 벗기기. 불투명한 보호필름이 안에도 밖에도 단단히 붙어서 어지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걸 다 떼어가려면 오늘 밤 수면시간이 줄어들 텐데 싶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바로 결심한다. "직접 떼라고 하면 다음부터 수업 안 할지도 몰라."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 찬스로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드디어 수업시간! 흔히 만드는 방법 대신 창작해 낸 방법으로 만들도록 했더니, 여유롭게 끝났다. 어떻게 하면 쉽게 만들면서 아크릴백의 매력이 잘 보이게 할까, 일주일간 안고 있던 내 고민은 뿌듯하게 해결되었다. 대신 꽃동호회 회원들에게 2가지 고민이 생겼다.
"이렇게 눈 높아져서 어쩌죠?"
선생님이 너무 예쁜 꽃을 많이 보여줘서 이제 웬만한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안목이 높아져서 큰일이라며. 덕분에 나도 매번 노력하게 된다.
"선생님 적자 아니세요?"
이런 다정한 걱정이 고맙다. 누가 보지 않아도 뿌듯한 애정을 가져는 꽃선생님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충만한 행복을 운반해 가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