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지나치게 좋아서 신부 부케로 위험하다고 했던 꽃은

플로리스트를 화나게 하는 화장품

by 한꽃차이

3대 향수 원료인 꽃이 있다. 장미, 자스민, 튜베로즈. 장미는 모를 수 없고 자스민도 들어봤을 거라.. 고 믿어본다. 알라딘에 나오는 자스민 공주, 허브차 이름, 방향제나 섬유유연제 샴푸 이름 그중 어딘가에서.


못 들어본 게 당연한 튜베로즈(tuberose). 이름에 로즈가 들어가지만 장미와는 계보가 조금도 겹치지 않는다. 장미는 장미과, 튜베로즈는 아스파라거스과. 혹시 이 아스파라거스가 그 먹는 아스파라거스인가 갸우뚱했다면 맞다고 칭찬해드리고 싶어진다. 아스파라거스와 좀 닮아 보이면서 더 잘 기억되길 살짝 바라본다.

플로리스트가 정말 좋아하는 꽃이란, 쓸 일 없어도 순수하게 내 곁에 두려고 사는 꽃이지 않을까. 플로리스트에게도 #내돈내산 #N차재구매 꽃이 있다. 튜베로즈는 내게 그런 꽃이다. 보이면 지나칠 수 없는 꽃. 날씨가 더워지면 몸은 힘들어져도 튜베로즈 나올 때가 됐네 기대하게 한다. 6월 16일 탄생화이기도 하다.


장담컨대, 한 번만 튜베로즈 향을 맡아보면 나처럼 중독되리라. 브래드 피트의 리즈시절 미모로 유명한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처럼. 인간이 된 주인공은 피넛버터를 처음 먹고 반해서 식사 때마다 빵도 없이 숟가락으로 먹는다. 매번 황홀해하면서.


당신이 그동안 알던 꽃향기는 낮의 향기였다. Queen of night, 월하향(月下香)이라는 또 다른 이름처럼 시공간 자체가 다른 차원의 향이다. 늦은 밤에 향이 가득해진다고 만향옥(晩香玉)이라고도 한다. 상상해보라. 딱 기분 좋을 만큼 비가 온 뒤 한여름밤 달빛 아래, 수만 평의 꽃밭 한가운데 서서 촉촉한 향 입자가 안개처럼 피부로 스며드는 그런 기분. 관능적이라고 여겨 신부 부케로는 위험하다고 했을 정도니까.

카라, 샌더소니아, 메밀꽃, 튜베로즈를 넣은 여름부케

다른 달콤한 꽃향기가 설탕이나 시럽이라면, 튜베로즈 향은 줄 서서 먹는 베이글 맛집 크림치즈 같다. 꾸덕하면서도 크리미 하다. 미끄럽지도 끈적이지도 않는 밀도 높은 부드러움. 진한 풍미가 농축되어 있는데 혀 끝에만 새콤함을 사뿐 남겨서 자꾸 먹게 되는 맛이랄까, 묵직하면서도 청초하다.

이토록 독보적인 향이니, 튜베로즈를 사용한 향수가 유명 향수 브랜드마다 있을 수밖에. 딥티크는 몰라도 도손은 안다는 딥티크의 베스트셀러, 딥디크 도손 오 드 뚜왈렛. 조말론의 튜베로즈 안젤리카. 톰포드 튜베로즈 뉘 오 드 퍼퓸, 샤넬 No5 등. 당신이 갖고 있는 향수나 바디로션, 핸드크림 뒷면에도 쓰여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향을 고르는 안목이 높다고 칭찬하고 싶다.


화장품에도 튜베로즈는 종종 등장한다. 그 이유로 내가 거르는 브랜드들이 생긴다. 튜베로즈 향이 난다고 하면서 상세페이지에 전혀 다른 꽃 사진을 올려놓은 경우, 전혀 튜베로즈 같지 않은 무성의한 사진인 경우, 잘못된 정보를 나열한 경우.


자몽 주스라면서 오렌지 사진 올려놓는 불성실함과 같다고 여겨진다. '자몽이나 오렌지나 친구지'라고 하며 넘어가는 관대함을 발휘할 수 없다. 튜베로즈를 애정하는 플로리스트는 솔직히 조금 화가 난다. 화라기보다 내 아이 이름 자꾸 다르게 부르는 선생님 앞에서의 불편감에 가깝다. 반대로 정성 담은 튜베로즈 사진이 있는 브랜드, 제대로 설명해 둔 브랜드는 호감이 간다.

평소 웬만한 일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는 나, 어지간해선 요동하지 않는 나이지만 꽃만은 양보할 수 없다. 마케터들이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지 알지만 말이다. "다 같은 꽃이 아니라고요", "이 꽃의 향은 이토록 다르다고요" 라고 외치느라 기어이 글까지 쓰는 플로리스트. 꽃 하나에 담긴 스토리, 가치, 아름다움을 진실되게 전하는 것 - 그것까지가 나의 꽃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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