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6주, 길모어걸스를 보며 딸 키울 준비하기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by 허영주

임신 16주 차, 남편이 라스베이거스로 친구들과 골프 여행을 떠났다. 곧 결혼할 친구의 bachelor party 겸 떠난 여행이었다. 홀로 집에 남은 나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초밥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결혼 전 나의 취미는 ‘혼자 오마카세 가기’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대부분의 음식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지만 초밥은 혼자 먹는 게 더 맛있다. 눈을 감고 하나하나 초밥의 아주 디테일한 맛을 깊이 느끼기 위해서는 그 어떤 방해도 없어야 한다. 홀로 앉아한 피스 한 피스, 명상하듯 조용히 맛을 느끼며 스시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재미란… 말로 다 못 한다.


오랜만에 혼자 오마카세에 가서 스시와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분기별로 이렇게 의식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없는 동안 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넷플릭스 <길모어걸스>를 보기로 했다. 길모어걸스의 주된 주제가 ‘엄마와 딸의 관계’라 곧 딸을 낳게 될 나에게 딱 맞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모어걸스의 주인공 로렐라이와 그녀의 딸 로리의 관계는 흔히 ‘친구 같은 엄마와 딸’로 표현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로렐라이가 엄마로서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로렐라이와 그녀의 어머니 에밀리의 관계는 ‘통제하는 엄마와 도망치는 딸’의 관계에 가깝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언어가 너무 다르기에 끊임없이 충돌한다. 에밀리는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하고, 로렐라이는 “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아”라고 느끼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로리의 한국인 친구 레인과 그녀의 엄마의 관계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검열하는 엄마와 숨어 사는 딸’, 혹은 ‘신앙과 규율로 묶인 엄마와 이중생활하는 딸’의 관계다. 레인의 엄마 미시즈 킴은 통제의 끝판왕으로, 완벽한 도덕 기준 아래 딸의 음악, 옷, 친구, 연애, 인생 전체를 관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로렐라이와 로리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친구 같은 관계의 이면에는 로리가 종종 ‘딸’이 아니라 ‘정서적 파트너’ 역할을 한다는 문제가 있다. 로렐라이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고, 엄마의 감정을 조절해 주고, 엄마가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로리. 따뜻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는 꽤 이른 어른의 역할이다.


나는 드라마를 보며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려보았다. 엄마와 나는 ‘친구 같은 관계’와 ‘통제하는 엄마와 도망치는 딸’이 섞여 있는 관계였던 것 같다. 어떤 시기에는 레인의 엄마처럼 극단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던 것 같고, 또 어떤 시기에는 누구보다 편한 친구 같았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늘 같지 않았고,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는 ‘같이’ 성장했다. 엄마도 나도 완벽하지 않았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자랐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독립한 지금, 우리의 관계는 가장 편안한 형태에 가까워졌다.


나는 뱃속의 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관계는 ‘정서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 존재적으로는 서로 독립된 사람’이다. 지금 내가 엄마와 맺고 있는 관계도, 남편과의 관계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딸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게 보일 때, 과연 나는 정말 존중하며 지켜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최악의 선택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결국 통제하는 엄마가 될지도 모르고, 그 선택이 우리 관계를 다치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바란다. 내가 현명한 엄마가 되기를. 감정이 아니라 인격으로, 힘이 아니라 ‘의사소통’으로 딸과 관계 맺는 엄마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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