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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zembro May 09. 2022

[보통의 존재] 외로운 날 술술 읽힌 책

언니네 이발관이란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유심히 들어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멤버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석원이란 이름을 알게 된 건 노래가 아니라 책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심심찮게 <보통의 존재>란 제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슬쩍 찾아본 인터뷰 속 그의 모습과 슬쩍 들어본 그의 노래는 일맥상통했다. 왠지 지금이 그를 알기에 적당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적당히 고생하고 적당히 체념해서 이십 대의 발랄함이 꽤나 퇴색된 지금. 출간된 지 십 년도 더 되고 그만큼 익히 들어온 그 책을 그제야 장바구니에 담았다.


읽으면서 나의 감상은 하나였다. 아니 이런 책이 그렇게 많이 읽혔다고? 숱한 고통을 지나와서 체념조로 담담하게 말하는, 그래서 더 어둡게만 느껴지는 이런 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그 사실이 따뜻한 위로보다는… 다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낯선 동질감으로 다가왔다. 근래 내 주변만 보면 대체 세상에 어두운 면이 있기나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서로 그런 면을 꽁꽁 숨겨두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처럼 기대와 설렘보다는 삶과 노화가 주는 당연한 고통과 고독, 어쩔 수 없는 체념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자기 취향이 확고해지기 마련이다. 내 것이 뭔지 몰라 갈팡질팡 헤매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건 노화가 주는 귀한 선물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장점은 외로움과 함께 온다. 내가 확고해진다는 건 곧 타자가 확고해진다는 것, 그 둘 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므로. 만인의 친구이자 만인의 애인이었던 시절은 이제 불가능하다. 갈수록 참된 대화라는 게 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말할 인간이 줄어든다. 한때 가능했던 이들과도 멀어지거나 내가 부러 멀어졌다. 이런 시점에 읽으니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유난히 많이 쓴 체념이란 말, 사실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체(諦) 자에는 진실, 이치라는 뜻도 있다.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나의 욕망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 그게 도리를 깨닫는 것이다. 이런 깊은 뜻을 지닌 말이 일상에선 부정적으로 쓰인다는 게 사뭇 상징적이다. 이 어두운 책이 샛노란 표지를 하고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서 좀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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