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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코이? 아이? 어느 쪽이십니까?

by 최유경

일본어에는 ‘코이(恋)’와 ‘아이(愛)’가 있습니다. 두 단어를 합치면 연애(恋愛)가 되는 이 말을 일본에서는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코이(恋)’와 ‘아이(愛)’가 사랑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코이(恋)’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으로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팬심 같은 거로 자신의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합니다. 대신 ‘아이(愛)’는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으로 혼자서는 성립할 수 없는 거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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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코이(恋)’는 좀 더 어른스러운 절절한 사랑을, ‘아이(愛)’는 그보다 가볍고 폭넓게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愛)’는 앞에 인류, 부모, 조국 등에 ‘아이(愛)’를 붙여 폭넓게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것도 기술(愛することは技術)’, ‘필요한 건 사랑뿐(必要なのは愛だけ)’ 등으로 아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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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기에 ‘사람 인(人)’ 자를 붙이면 좀 의미가 많이 달라집니다. 연인(恋人)은 일본어로 코이비토라고 하는데 한자로 연인이지만 그냥 애인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애인(愛人)은 일본어로 아이징이라고 하는데 이건 흔히 남자들이 바람피우는 상대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니 혼동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애인이라는 말 대신 여자친구, 남자친구라는 말을 쓰듯이 일본에서도 카레(彼, 남자친구), 카레 씨(彼女, 여자친구)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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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옆에서 “아빠 어디가 좋았어?”라고 딸이 묻습니다. 어디가 좋았을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면 사소한 거로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이불킥을 할 정도로 좋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 속의 여우의 말처럼 4시에 약속을 하면 3시부터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 전날부터 여행하는 전날처럼 기대에 부풀고 잠을 못 이뤘던 적도 있습니다. 근데 왜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 내 가슴을 격하게 뛰게 하는 사람의 손을 왜 놓아버린 걸까? 딸의 물음에 빛바랜 사진을 찾아내듯 기억의 저편에 숨어버린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아마 그 사랑이 너무 뜨거워서 손이 데일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삶은 뜨거움이 아닌 나를 나로 있게 하는 편안함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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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여자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칭찬으로 건네는 ‘예쁘다’란 말에도 ‘여자는 예뻐야 하는 거야?’라고 발끈하곤 했습니다. 사소한 말들에도 여자라고 그러는 건가? 그 ‘여자가’란 말과 참으로 오랫동안 싸워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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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말도 나를 찌르는 칼이 되고 그 상처를 상처라고 말하는 것이 지는 것 같아 너무나 싫게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요즘 말로 페미니스트였던 것도 아닌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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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 그저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말과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나를 상처 주려 건네는 칼날이 숨어 있는 말들과도 잘 싸우려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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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오랜 유학생활을 통해 저에게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상대방이 나를 흠내려는 말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칼로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좋아하는 마음에 다른 잣대가 필요 없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그런 편안한 사랑(愛)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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