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면서 좀 불편한 감정이 드는 말 중 하나가 ‘불우이웃’이라는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서는 본인이 원하지 않은 불가피한 시대적, 환경적 상황으로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불우이웃이란 말이 떠오르면 ‘불쌍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그건 아마도 ‘불우이웃돕기’ 등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말들은 그 단어의 본연의 뜻이 어떠하든 하나의 이미지를 갖게 되면 여기서 벗어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장애우, 불우이웃, 다문화가족 등의 말처럼 나름 배려한다고 만들어진 말이 구별되고 차별이 되는 말들로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불우이웃과 유사한 일본어식 표현으로 ‘메구마레나이 히토(恵まれない人)’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없다거나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들, 장애가 있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거나 처한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을 통칭하여 ‘메구마레나이 히토(恵まれない人)’라고 부릅니다.
뿐만아니라 아이가 생기지않은 부부는 저희는 '아이가 메구마레나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마치 뭔가 잘못해서 아이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메구마레나이 히토(恵まれない人)는 한자 ‘은혜 혜(恵)’자를 쓰는 동사 메쿠무의 가능, 자동, 수동형의 부정형으로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주체가 없는 말로 도대체 누가 은혜를 베풀어주는 데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 말은 극단적으로 누군가로부터 버림받는 사람들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차별하는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였으며, 이는 사고의 본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초기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언어가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언어란 세상을 그리는 그림’으로 언어와 세상의 논리구조는 정확하게 일치하며 언어의 구조가 사고의 구조와 직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말)는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어떤 단어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지에 따라 사고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행하다’, ‘불우하다’, ‘넌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면, 나조차 나를 그런 사람으로만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을 통해, 사고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선입견에 의한 차별을 ‘microaggression(마이크로어그레션)’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작은’이라는 뜻의 micro와 ‘공격’을 뜻하는 aggression의 합성어로 장애인, 성 소수자, 장애인, 한부모 가정 등 우리가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미묘한 차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무심히 상대방에 던진 ‘여자라서 그래’, ‘아, 신입인데 잘한다.’, ‘아르바이트생인데 열심히 하네’ 등과 같은, 악의는 없지만 선입견이 담긴 말들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이 나를 비롯한 내가 사는 사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고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나의 말에 어떤 시선이 담겨 있는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