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소중한것이 너에게도 그렇기를
주말을 맞아 산행을 최대한 낮은 산으로 골랐다. 산타기가 아닌 산보를 위해. 낮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의례 편안하면서 여유로운 표정과 그들의 가벼운 발길이 좋다. 이건 무슨 나무일까? 얼마나 오래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서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비밀의 비릿함을 알고 있는 걸까. 를 꿈꾸듯이 생각하며 걷는 산길은 처음 보는 길도 두렵지 않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낯설지 않다.
한참을 이 생각 저 생각을 오가며 혼자 웃었다 표정을 굳혔다 풀었다 해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소오옥 나를 보고
" 안녕? 산에서 밤나무는 처음이지?" 라며 밤 한 톨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
어떻게 알았지? 나는 밤과 슈퍼에서만 만나봤지. 비닐에 싸인 너를. 너어 잘 만났다. 다 주워 주겠어 라며 원래의 산보의 의미는 새까맣게 잊어 던지고 밤 줍기에 돌입했다. 그렇지 다람쥐를 위해 4개 중 1개만 주울거야.
이렇게 낙엽 속의 보물들을 주워 담으면서 엊그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때의 일을 이 낙엽 속에 묻어버리자. 밤 한 톨을 줍는 대신 내 상념들을 하나씩 그 자리에 남몰래 사장시켜버려야지. 이런 불경한 생각들을 해가면서 낙엽을 들추고 떨어진 밤송이를 내 약 오름을 담아 잘근잘근 밞으면서 내 안 좋았던 장면들을 없애 나갔다.
산길을 벗어난 길가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오가는 청설모에게 저기 가면 너 먹을 것 많던데... 를 아쉬워하며
" 잠깐 거기서 봐"을 외치고 - 또 청설모는 서란다고 선다?- 주운 밤 중에 가장 실한 놈으로 골라 낮은 기둥에 놓아두고 멈칫하더니 제갈길을 가는 고놈을 위해 언젠가는 알아보고 주어가기를 바라면서 돌아왔다.
좋은 산보였다. 나무들만 밤송이만 아는 나의 추악함을 길치인 나는 다시 찾지 못하는 어느 산속에 버리고 성공적으로 미션을 마친 요원처럼 산행에 입었던 옷가지들을 증거인멸을 위해 바로 세탁기에 넣어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