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아마라톤 서브 4

by 달려보자go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출발!!

마라톤 대회 전문 MC 배동성 님의 특유의 힘찬 구호 아래 수많은 주자들이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내가 속한 D그룹도 출발 준비를 한다. 점차 출발선이 가까워질수록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친다.

드디어 출발선을 통과한다. 삐빅! 삐삑!

여기저기서 러닝용 스마트워치의 출발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좋아, 가보자!‘

마라톤 대회를 출발할 때의 기분은 뭐랄까 짜릿하다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수천 명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엄청난 고통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동료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강한 맞바람에 몸이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좀 더 눌러쓴다. 옷핀으로 고정한 배번호가 바람에 펄럭인다.

‘설마 바람에 날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행여나 달리는 도중에 기록칩이 붙어있는 배번호가 떨어져 나가면 기록 측정이 불가능하다. 낭패를 보는 것이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해서는 안되지’

손으로 배번호를 배에 밀착시켜 본다.

오늘 레이스 전략은 단순하다.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킬로당 5분 25초 페이스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1차 목표는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 2차 목표는 3시간 5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지난 대회에서도 마지막 41킬로미터 지점 오르막에서 걷지만 않았어도 서브 4는 충분히 가능한 페이스였다.

다행히 이번 서울마라톤은 대부분 평지 코스다. 그래서 기록 내기가 좋은 대회라고 한다.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에너지가 고갈될지 모른다. 오늘은 에너지젤을 총 6개를 챙겼다. 그리고 비장의 특제 음료를 준비했다.

집에서 아이들 약먹일 때 쓰는 30ml 투약병 두 개를 준비해서 하나에는 박카스를 담았고 나머지 하나에는 파워에이드에 꿀을 넣어서 만든 음료를 담았다.

마치 요술주머니처럼 힘들 때 하나씩 먹는 거다. 박카스는 30킬로미터 지점에서, 꿀을 넣은 파워에이드는 38킬로미터 지점에서 마실 계획이다. 에너지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대회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아직도 생생하다.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 터벅터벅 걸을 때의 그 기분. 이번엔 반드시 걷지 않고 들어올 것이다.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숭례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왼쪽으로 꺾어 을지로입구를 향해 달린다. 첫 번째 약한 업힐이 나온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왼쪽에 끼고 한 바퀴 돈다. 업힐을 오를 때는 보폭을 줄이고 땅을 쳐다보며 달린다.

오르막에서도 페이스는 최대한 유지하고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고 회복 개념으로 역시 페이스를 맞춰서 내려와야 한다. 내리막에서 기분 좋게 속도를 내면 나중에 퍼질 수가 있다. 어디까지나 일정한 리듬으로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새 5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평균 페이스 5분 25초, 심박수 131.

심박수에 여유가 있고 아직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다. 이제 을지로를 나와 청계천 구간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그때 오른쪽 허벅지가 조금 묵직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어제 오전에 8킬로미터 조깅을 한 것이 조금 무리가 된 모양이다.

회사 동료와 매주 토요일 아침에 조깅을 하는데 약속을 취소하기 미안해 어제도 그냥 달린 것이다. 양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하는 편이 레이스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레이스를 보수적으로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힘을 빼고 리듬으로 달리자’

불필요한 힘을 빼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은 마라톤은 리듬과 피치로 달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리듬을 살려서 달린다.’

이제 코스 중에서 가장 지루한 청계천 구간에 들어섰다. 주로가 좁고 비슷한 풍경이 이어져 지루하다. 이 구간을 잘 빠져나가면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드디어 청계천을 나와 흥인지문을 향해 달린다. 20킬로미터 지점. 평균페이스 5분 21초. 안정적인 레이스가 이어진다.

이제 절반이 지나간다. 저 멀리 200미터 정도 앞에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 풍선이 보인다.

‘저기에 붙어 가야겠다.’ 페이스를 살짝 올려 따라간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3시간 50분 무리를 합류했다.

이제 마지막까지 이 대열에서 처지지 않고 달리면 되는 것이다.

30킬로 지점을 지날 때 드디어 요술 주머니하나를 사용한다. 그런데 러닝 벨트 뒤쪽에 넣어둔 약통을 빼기 위해 팔을 뒤로 꺾은 순간 오른쪽 어깨가 빠질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추운 날씨에 근육이 긴장을 했는지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추위로 손가락이 얼어 벨트의 지퍼를 열지 못했다. 결국 주로 가장자리로 나가 잠시 멈춰 섰다. 어깨를 살살 돌려본다. 다행히 통증이 가라앉는다. 박카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레이스를 시작한다. 결승선까지 10킬로미터가 남았다.

이제부터 진짜 마라톤이 시작된다. 다시 리듬을 되찾기 위해 속으로 구호를 넣으며 달린다.

왼발! 왼발! 군대에서 구보를 할 때와 동일한 방식이다. 일정한 리듬을 맞출 때 유용하다. ‘군대가 도움이 될 때가 있군.’

32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옆에 여자 러너가 가까이 붙었다. 키가 나와 비슷하고 날씬하고 다리가 긴 러너다. 나와 속도와 리듬이 비슷하다. 그래서 넓은 주로 가운데에서 나와 둘이서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돌려 쳐다볼 겨를은 없다. 다만 옆에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이다. 레이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37킬로미터 지점에서 드디어 롯데 타워가 보인다. 곧이어 잠실대교가 보인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 요술 주머니도 사용했다. 잠실대교에 응원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외쳐준다. 눈물 나게 고맙다. 잠실대교를 거의 건널 무렵 응원해 주는 누군가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의 손이 힘차게 부딪친다. 없던 힘이 났다. 그분께 감사드린다. 응원의 힘을 느꼈다. 정말 에너지를 받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제 잠실대교를 지나 잠실역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마지막 직선 주로를 달린다.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힘들다. 그리고 엄청난 맞바람이 분다. 고개를 들기가 어렵다. 이제 1킬로미터 정도 남았다.

페이스 5분 35초. 다 왔다!!

이제 지금 페이스로 유지만 하면 3시간 50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버텨야 한다! 결승선이 200미터 남았다.

다 왔다!!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힘껏 달린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3시간 48분 48초 !!! 해냈다!

감격할 겨를도 없이 달리기를 멈추니 금세 추위를 느꼈다.

자원봉자사 분께서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신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 풀코스 도전에서 드디어 걷지 않고 완주를 했다. 결국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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