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지 않는다면 운이 좋은 겁니다.
축하합니다. 채용 지원에 최종 합격했다면 마침내 직업상담사의 세계로 첫걸음을 뗀 것이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첫 상담을 해야만 하는 시기는 금세 찾아온다. 설렘과 긴장이 가득하고 여러 걱정이 물밀듯 올려오는 그런 시기다.
나의 첫 상담을 떠올려보자면 아주 완벽하게 망한 상담이었다. 내담자는 비교적 평범한 케이스였다. 진로 방향이 명확히 정해진 특수 전공에 재학 중이었으나, 전공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다소 걱정이 있었고. 아직 진로나 취업에 큰 걱정이나 고민이 없는 평범한 대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원체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어째서인지 이 내담자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약 45분 정도 되는 상담을 진행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면접 때 보다 훨씬 더 긴장했으므로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쉬운 흐름에도 다소 당황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직감적으로 ‘아 망했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배려심 있는 내담자는 상담실을 나가는 순간까지 밝은 표정을 유지해 주었다. 그러고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상담이 끝난 이후, 약속했던 자료를 보내주었는데 하루 종일 읽지 않더니 나중에 다시 보니 읽기만 하고 답장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난 후 잘 지내는지 안부와 함께 재상담을 희망하는지를 물었는데, 보기 좋게 무응답의 결말을 얻었다.
대부분의 첫 상담은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첫 상담을 아주 잘 망치고 내담자에게 철벽 당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첫 상담에 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딱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먼저 내담자의 말을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상담을 앞두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미리 구상했었다. 마치 연기를 하려는 배우처럼 대본 같은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상담은 일방적으로 나만 말하는 과정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할지를 떠올리기보다, 어떻게 내담자의 고민과 경험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내담자: 저는 전공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상담사: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전공과 맞지 않다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제 어쩌지) → X
상담사: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계기가 된 사건이 있나요? 전공 선택의 이유가 뭐였나요? 새롭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나요? 현재 전공에서 만족스러운 점과 불만족스러운 점이 뭔가요? → O
내담자의 이야기에는 공감의 반응을 보이되, 내 경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면 두 문장 정도가 적당하다. 덧붙이자면 대본은 필요 없지만, 상담을 마무리할 때만큼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 두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초보 티를 내지 않으려고 과장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처음의 나는 내가 지식과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에,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특히나 첫 근무지였던 대학교는 내담자들과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떨 때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 내담자가 되었고, 본인보다 어린 상담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초리를 느꼈다. 이 때문에 나는 우습게도 조금씩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고 그 눈초리는 점차 사라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누가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닌데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 뒤부터는 내담자들에게 더 이상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대신 ‘저는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궁금한 것이나 고민을 알려주시면 최선을 다해 내담자님과 함께 공부하고 찾고 또 고민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직업상담사가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는 않다는 말에 대부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내가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는 다음 상담까지 각자의 자료 수집과 과제를 설정하며 내담자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는 체를 하던 때보다 훨씬 원활한 라포형성이 가능해졌고, 만족도 평가에서도 진심어리다는 평이 늘게 되었다. 또 내담자와의 협력관계를 이루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지식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내 상담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떳떳하게 되어 기뻤다.
설렘과 기대로 앞둔 첫 상담은,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상담 시간 내에서는 최대한 내담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가진 역량에 대해 솔직한 태도를 보인다면 적어도 나만큼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 한 건의 상담으로 본인의 상담 역량을 점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전거를 처음 탄 아이가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보고 ‘쟤는 자전거 못 타는 아이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첫 상담에서 느낀 부족함을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것이 성장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