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
2. 자신이 경험한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3. 어떤 사실에 관하여, 또는 있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꾸며 재미있게 하는 말
“엄마 내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퇴근 후 집에 가자 마자부터 자기 전까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딸래미들 덕분에 나의 귀는 항상 쉴 틈이 없다.
한 놈 처리하고 나면, 또 다른 놈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엄마만 있냐? 아빠도 이런 이야기 좋아하신다. 아빠한테 말씀드려라”고 소리쳐도 그때 뿐이다.
하루종일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싶다가도 나도 이제 휴식을 좀 취하고 싶은데 이것들이 도와주지를 않네...라는 생각도 들 때가 많다.
하지만 딸래미들이 해맑은 얼굴로 하루의 일상을 쏟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둘째는 요즘 사춘기가 와서 예전보다 말수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와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엄마 옷 좀 갈아입고!!!”라고 버럭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요즘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힘을 얻게 된다.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밥이 들어갈 때만 입을 열어보자고 말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첫째와 둘째의 일정이 바빠서 가족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이 드물어졌다.
어느 육아 서적에 적힌 '아이들이 부모에게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는 말을 요즘 실감한다. 우리집도 이제 때가 왔구나...
그래서 요즘은 대화가 조금 부족해졌다 싶으면 내가 아이들 방방마다 찾아가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일명 찾아가는 이야기 꽃밭...
첫째는 진로와 학업에 대한 주제, 둘째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주제, 막내는 딱히 정해진 주제가 없다.
첫째는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얼마전까지 까불고,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가 요즘은 제법 진지해졌다.
"엄마, 내신 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직 입학 전인데 내신을 챙기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요즘 첫째 방에 가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많고, 그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진지하게 들어준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어떤 것이 내가 잘할 수 있고, 나에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모습이 어른스러워 보여 뿌듯하면서도 왠지 서운하다.
둘째는 올해 중학생이 되는데,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친구 관계다.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많은 아이여서 다양한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 A가 B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시작되는 이야기는 복잡한 십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너무 다른 사람 이야기만 많이 해서 “엄마는 너의 하루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라고 물어도 주로 대화 주제는 친구들이다.
다른이의 시선과 관계가 중요한 사춘기 시절이니 이 시기에 실컷 관찰해보고 고민해보라고 놔둔다.
하지만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했어?" 라고 물으면 가끔 친절히 답을 해주는 둘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셋째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게 흥미로운 아이다.
"엄마, 오늘 내가 이거 만들었는데 정말 멋진 것 같아요!" 밑도 끝도 없는 자랑부터 친구들과의 놀이까지, 하루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들려준다.
아직 숙제를 도와줘야 하는 나이지만, 가끔 "저 혼자 다 해놨지요"라며 독립심을 보일 때면 뿌듯하다.
막내와의 이야기 시간은 그날의 피로를 씻어주는 힐링 타임이다.
모든 날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말을 아끼는 날도 있고, 나도 너무 지쳐서 제대로 듣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이야기는 강요할 수 없는 것!!
기다림도 소통의 한 방법임을 배웠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에게는 더욱 그렇다.
말을 아끼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귀를 열어두려 노력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모두 자라 각자의 길을 떠날 때, 우리의 '찾아가는 이야기 꽃밭'이 그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힘든 시간을 겪을 때면 "그때 엄마랑 이야기했던 것처럼..."이라고 기억하며 위로받기를....
지금은 가끔 지치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 소중한 시간들이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문을 두드린다.
"딸래미 뭐해??"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형태는 바뀌어도, 거리가 생겨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가족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