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를 부탁한 할머니, 알고 보니 건물주였다

겉모습이 아닌 진심으로 관계를 맺을 때 얻는 뜻밖의 선물

by 제드 Jed

압구정 피트니스 클럽은 화려함의 상징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눈부신 스포츠카와

각종 수입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잘 알려진 연예인이나

모델들을 마주치는 일도 흔했다.


압구정과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 분당이나 일산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오는 회원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도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다니는

‘찐부자’ 고객도 많았다.


이런 환경은 내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화려한 고객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 보였지만,

동시에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긴장감이 나를 움직였다.


상담은 단순히 운동 시설을

소개하는 일이 아니었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어느 한적한 주말 오후,

리셉션에서 카운슬러 호출 콜이 울렸다.
“민우야, 나가봐.”
지배인님의 말에 나는 서둘러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70대 할머니가 서 계셨다.

허리가 불편해 분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오는 길에,

의사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해 보려고

들르셨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할머니께

맞는 기구를 보여드리고,

요가센터에서 스트레칭도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투어를 이어갔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요가 매트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매트 남는 거 있으면 하나 줄 수 없나?”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센터에 확인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곧 남는 매트가 없다는 답을 듣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면서도 덧붙였다.
“운동 자주 나오시면 제가 하나 준비해 드릴게요. “


사우나를 둘러보시던 할머니는

“우리 할아버지가 자주 오면 좋겠네”

하시며 미소 지으셨다.

나는 운동을 못 나오시더라도 사우나만

이용해도 좋다고 설명드리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상담은 길어졌다.

평생회원권 가격을 묻는 할머니께,

나는 우선 3개월 정도 이용해 보신 뒤

몸에 맞으면 전환하시라고 권했다.


그렇게 상담은 2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났고,

할머니는 내 명함을 받아 들고 돌아가셨다.

가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운동의 필요성을 충분히 전해드렸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다시 클럽의 프로모션 데이가 찾아왔다.

매출 목표 때문에 카운슬러들이

전쟁을 치르는 날이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예약도 부족했고,

실적은 바닥이었다.

나 역시 고객을 모으지 못해 고개만 떨군 채

전화기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팀장의 눈빛은 점점 매서워졌고,

공기는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때 리셉션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카운슬러 민우, 리셉션으로 와주세요.”
예약 고객도 없는데 누굴까 싶어 서둘러 나갔더니, 놀랍게도 오래전 상담했던 바로

그 할머니가 서 계셨다.

이번에는 아드님과 함께였다.


나는 두 분을 모시고 다시 투어를 진행한 후

상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민우 씨, 평생회원권으로 다섯 계좌 해줘.”
“네? 다섯이요?”
“웅, 우리 식구들 다 다니려고.

그때 설명 잘해줘서 일부러 민우 씨 찾아온 거야"


잠시 후,

아드님은 아무렇지 않게 결제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차마 믿기지 않았다.

고객 카드를 작성하며 주소를 확인하는데,

그 할머니는 우리가 회식 때 자주 가던

유명 소고기집 건물의 주인이셨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요가 매트 하나를 달라고 하셨던 분이,

알고 보니 압구정 일대의 건물주이자

진정한 ‘찐부자’ 셨던 것이다.


그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진짜 부자는 티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선택은 나를 또 한 번 성장시켰다.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우나를

자주 이용하셨고, 오시면 내게 인절미를

챙겨주시고 커피도 사주셨다.

나는 약속대로 요가 매트를 사비로 준비해 드렸다.

그 작은 선물을 건네던 순간,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은 듯한 마음이 들었다.


요가 매트를 부탁하던 평범한 할머니에게서

배운 교훈은 오래 남았다.
겉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사회생활의 본질임을 깨달은 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한편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트니스는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이제는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갈 때다.”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

결국 나는 또 다른 선택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다음 회: 〈떠날 시간, 더 큰 무대로〉

― 익숙한 자리를 뒤로하고, 새로운 성장의 길을 향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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