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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May 29.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저는 고자가 아닙니다

" 저는 고자가 아닙니다"..

누구나 첫 시작의 때는 걱정과 긴장 그리고 황당함을 느끼게 되는 상황일겁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입사가 결정이 되고 교육 훈련을 마치고 첫 국제선 비행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목적지는 나리타.

신입이라 체류는 하지않고 나리타 도착후 약 2시간 정도 머무르고 다시 서울로 오는 비행이었습니다.

우리 승무원들은 이런 비행을 퀵턴(quick turn)이라고 부릅니다.


그날 노선 특성상 2명의 일본인 승무원이 함께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륙 후 항공기가 순항고도에 이르자 승무원들은 갤리(승무원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승객들에게 드릴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열된 앙뜨레(Entree, 메인 dish)를 트레이(Meal tray) 에 하나씩 올리는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것을 앙뜨레 세팅이라고 하는데 , 보통 2명이 함께 작업하면서 한명이 카트(cart)에서 트레이를 빼면 다른 한명이  앙뜨레(main dish) 를 올리는 작업입니다.


그날 일본인 승무원(입사선배)이 트레이를 빼면 제가 앙뜨레를 올리는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그 일본인 여승무원이 어설픈 한국어로 " 꼭 고자 같아요.." ..라고 저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엥? 뭐라는거지? 나보고 고자라고? 이 사람이? 날 뭘로보고? 도대체 어딜봐서? ....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표정은 바뀌고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고..그래서

순간 영어로 물어봤습니다.

" What do you mean?"

그녀도 잠시 멈칫하더니 " 고자 같아요.."..


아! 이 여자가 날 언제 봤다고..

전 어이 없다는 표정을 하고 그녀에게 천천히 한국말로 " 전 고자가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색한 표정이 잠시 오가고 우리는 묵묵히 하던 일을 하였습니다..


앙뜨레 세팅이 끝나고 서비스를 나가려던 순간 잠시 갤리를 나갔다 오던 그 일본인 여승무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아~~ 공장 같아요~"


그때서야 모든 오해가 풀렸습니다.

첫 비행으로 긴장한 내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나름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하는것을 한국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공장'을  어설프게 '고자' 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영문을 모르는 다른 선배 승무원들이 설명을 듣고 함께 웃었습니다..

이후 다른 선배 승무원들이 저더러 일본인 승무원에게 ' 고자 ' 뜻을 설명해주라고 말하고 서비스를 하러 나갔습니다..

''고자' 를어떻게 설명하지? ㅋㅋㅋ'


신입때 경험한 이 일로 저는 일본어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되었고 소통의 중요성을 작게나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인종이 비행기라는 한 공간에서 10시간 이상 지내다 보면 언어로 인한 갈등과 오해도 있지만 웃지못할 해프닝도 자주 생깁니다.

서비스라는 것도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거나 잘 웃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통을 전제로 고객의 표정을 살피고 경청하고 확인한 다음에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더 좋은 서비스의 바탕입니다.


지금은 25년차 비행 승무원으로서 이러한 해프닝을 겪기보다 갈등과 오해를 풀기 위한 일들에 더 많은 열정과 경험을 사용하고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함께 웃을수 있는 해프닝을 기대하는데, 점점 각박해지는 승객과 승무원들로 인해 비행의 즐거움은 예전만 못합니다.


지금 그 일본인 여승무원은 무얼 하고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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