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불러주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너>의 의미가 되어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개 너무 이르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보는 그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혹시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직 협잡꾼이 되기엔
젊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사랑으로
즐거운 이야기보다
사랑으로 운다거나
사랑 때문에 앓는 소리를
듣는 게 일반적이라면
그대가 듣을 수 있는
즐거운 사랑이야기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속성 상, 이제는
사랑으로 반추할 수 있는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더 이상 그가 빈 위장으로
굶주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를 말해도 늦지 않으므로,
그대가 너무 서둘러
또는 너무 일찍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미리, 아니면 평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 전에
그가 가진 여러 의미에서
어느 하나를 그대가 사랑하는 거라고
간주해두는 게 영리하다 싶다
그렇다고 그에게
"너는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따져보고 사랑을 시작해야 할까,
아, 그러니까,
그대가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까지라고 그에게
못을 박어두는 게 좋을까?
해봤으니 알겠지만, 도대체 사랑은
그렇게 따지고 말해지지 않는다
사랑을 도취(陶醉)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데,
우리가 사랑을 부감(俯瞰)할 때는
일탈을 사랑으로 즐긴 후
일상으로 버려졌을 때이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다면, 그는
어떤 인간이든 될 수 있다
그의 등 뒤에서 아무리 사랑을 앓아도
그대는 단지, 그에게 완전한
타인이 아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대가 하는 사랑이 어떻든,
그대에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인간'이나,
'그러면 안 되는 인간'은 없다
그는 언제든 그대에게
'그럴 수 있는 인간'인 것을
그대가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사랑을 위한, 그리고
사랑을 버리기 위한
유효기간 없는 처방전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