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가을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계절, 가을





그대의 생체시계가

가을을 준비할 때는

옆구리가 썰렁하거나,

가슴이 괜히 서늘하다

어느 계절이든

36.5 ºC 의 온정이

없어서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즈음 더 아쉬운 건

그대 자신이 제법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마음의 시위 때문이다

자신을 다독이는 건

태도로 얼버무려도

그대가 그대 자신을

포옹해 주기에는

팔이 턱없이 짧다

그대를 포옹하기에

가장 알맞은 팔은

역시 그대 옆에 없는

그가 가진 팔이다

그러나 함부로

그에게 그대를

사랑하라 할 수 없다

그대는 그대의 의지를

관철할 수도 있는

삶을 견지한다 해도,

사랑은 그럴 수 없다

그대가 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그대가 사랑스럽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대를 사랑할 만한

분별력을 가진 그가

드문 것뿐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낭만주의자여서

사랑에 삶 전체를 맡기려는

자신의 엄숙함 때문에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은 덤이다

사랑과 삶을

구별하지 않는 그의

사랑은 피곤하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를 찾아가는 계절의

무위(無爲)를 즐긴다


전혀 생각지 않던 순간에

문득 느꼈다는

사랑 이야기를 즐긴다


어느 맑은 날에

느닷없이 서먹해졌다는

사랑 이야기도 즐긴다


언젠가 그 모든 것이

쓸데없을 때가 온다면,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이

사소해질 때는 그대가

사랑에 빠졌을 때일 터다



밤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투더운 옷을 입을수록

그대는 너그러워진다

숨을 호호 불어가며

붕어 단팥빵을 사 먹고,

늦은 밤 이불 뒤집어쓴 채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사람 곁이 아쉬운 것이

꼭 가을이어서는 아니지만,

그대의 곁을 내주는 데에

그 너그러움은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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