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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ug 29. 2018

헤어져? 나를 사랑했구나!

생각편의점


헤어져? 나를 사랑했구나!




자꾸 얘기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헤어질 수 없다. 사랑하니까 헤어질 수 있다. 꼴 보기 싫다. 생각하기도 싫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를 이제 사랑하지 않아>라고 하는 게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자신을 도저히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 거다. 멋모르는 강아지가 제 꼬리 까부는 것에 열 받았을 때, 고개를 외로 꼬고 기어이 제 꼬리를 물려고 뱅뱅 제자리를 도는 것같은 헛짓은 하지 않는다. 나로서도 괜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치고 있었다는 것을 훗날 확인하는 건 짜증나는 일이다. 맞다. 사랑하지 않아. 끝내자. 그건 배려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는 사랑하지 않기에 않는다고 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맞다. 그것은 사랑한 것도 맞다는 이야기다. 다만, 더는 아닌 것뿐이다. 그 솔직함은, 사실 그 자신의 탈출이 아니라 내 자유를 위해 필요하다. 더 이상 나는 그를 앓지 않아도 좋다. 그의 야비함이나 비겁함에 모든 진을 빨리고 싶지 않다. 사람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만 사랑을 즐길 수 있다. 훗날, 한 때의 사랑으로 남는 건 그런 사랑이다.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해 줄 때 나는 고맙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줄 때도 고맙다.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은 그는 내게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당나귀 삼대 잡종과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반추되는 거다. 가장 좋은 사람이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희망고문할 권리는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를 사랑했던 건 내 수치다. 달갑지 않다. <그러니까 말해. 사랑하지 않는다고! 뭘 미적미적 거려!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 세월이 약이라고? 아, 이게 나를 사랑하기나 한 거야?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이나 하게, 우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라니까, 이기적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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