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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야, 그때 그 시절이 된다

생각편의점

by 어뉘

살아내야, 그때 그 시절이 된다




요즘 가슴이 답답한 건

악이 고스란히 드러나도,

그 악을 또 다른 악으로 덮으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가

흔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살아지는 대로 살면 그만인 시절엔

모든 이가 선이 삶의 기본인 듯

계면쩍은 얼굴로라도

악을 감추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살다 보면

'뭐, 나도 그럴 적 없겠어!' 라며

그 모습을 보는 이도

관용을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답답함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우리 삶을 위한 다른

보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삶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 더 배우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부대끼며 사는

이 사회는, 오히려,

저지른 악을 감추려는 위선자가 많아져야

이상적인 사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 겁니다


악이 너무 흔해서

위선도 사치인 듯한 요즘은-

물론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칫 누군가가 당신을

하염없이 악으로 만들고,

악이기에 기어이 죽어야 한다며,

노골적인 동시에 날 것의 악으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덧붙이는데*,

저 말속엔, 당신이 지금,

자신의 위선을 자각하고 있다 해도,

오로지 그 이유로 자신을

비난할 건 없다는 위로도 있습니다


보통은 절대선을 지향하지만,

요즘은 악해도 위선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로 괜찮지 않은가 싶은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있는 악은,

생명을 가진 개체의 천부적

이기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버려지지 않을 텐데,

악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위선적이 되어도 좋다는 겁니다




여타 동물의 세계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미의

새끼들에 대한 교육은

삶을 살아낼 방법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교육은,

직접적인 살아낼 방법보다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반어적으로, 인간이 나쁘다는 걸

가르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 하지 마라, 가지 마라,

해야 한다, 가야 한다"


그렇다면 악을 또 다른 악으로

덮으려고 하지 않는 한, 굳이

선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온전한 선으로 살려면, 오히려

자신 속에 내재된 악으로 인해

죄책감이나 자기 모멸감으로

냉소주의적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착한 척이라도 해라**"


흔히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인간의

행동 규범을 지적하는 말로써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인간쓰레기가 하듯이

넘어져 무릎이 살짝 까진 아이에게,

"야야, 너 정말 큰일 났다!"라며

오히려 아이를 더 크게 울리거나

까무러치는 모습을 즐기려는 듯

아이의 얼굴을 곁눈으로

살피지 않는 정도의 당신이라면

당신의 선을 자랑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왜 악이 선보다

힘이 센지는 아시지요?

악은 파괴를 지향하며

선은 생산을 지향합니다

대체로 악은 현재를 살고,

선은 미래를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즘'이라는 걸

입에 담을 때는 대체로

악에 관한 소회가 담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자신의, 타인의,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법 괜찮은,

선한 사람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어뉘가 아닌 다른 이가 이 말을 하고 있다면,

경계의 눈초리를 그에게 던져야 한다

가스라이팅의 시작이거나, 아니면,

부당한 강요를 위한 밑밥이라고 봐도 될 터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서 할 말은,

'사랑해!' 뿐이다

그 밖의 어떤 말이든 무시한다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그라면,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랑을 혀끝의 장식으로 쓰는 게 분명하다



** 생을 달리 한 권익위의 어느 분을 보며, 언뜻 든 생각이다. 착한 척이라도 해서, 양심고백이라도 했다면 그는 살아 있을 사람이 아닐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미시마 유키오의 인간 면모는 잘 모르지만, 그가 쓴 책에 '부도덕교육강좌'라는 책이 있다. 거기 실린 글꼭지 가운데, '남을 괴롭히고 죽어라'라는 게 있다. 반어법적 표현으로, 나름의 자살 회피법을 말하고 있다.

"죽는 마당에 쓸쓸히 죽을 건 뭐냐. 말하자면, 한강다리라도 폭파해서 놀란 사람들 입에 입방아라도 달아주고 가라.

그러려면, 물질의 성질, 화학적 지식, 나아가 폭약을 만드는 법, 효과적인 폭약의 양과 설치 위치 등등..." 배워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다 보면, 어느 순간 죽으려던 생각은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고, 혹시라도 새로운 것에 도취되면 죽음에 대한 충동은 흐지부지되고 죽음에 콧방귀를 뀌지 않겠냐는 것이다.


(미시마 자신도 요란하게 죽기는 했다. 다만 그가 외친 구호와는 달리, 죽는 게 장엄하지는 않았다는데, 미시마가 자신의 배를 칼로 그은 후, 미시마의 부탁으로 입회한 카이샤쿠라고 하는 할복보조자의 어설픈 칼질로 즉사하지 않은 미시마의 몸이 고통으로 온 방안을 휘젓는 바람에 피가 낭자했다고 전해진다.)


여하튼, 그래서 욕 많이 먹는 놈이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고, 웬만큼 살다 가려면, 착한 척이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특히 요즘은.


그리고, 살아내야, 비로소 그때 그 시절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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