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앞의 '산다는, 괜찮은 일'을 쓰면서,
혹시, 모든 것을 두고 가는, 또는
버리고 가는 쾌감도 있지 않을까,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되도록 무엇인가를 갖지 않는 삶이
버릴 게 없어서 홀가분할 테지만,
혹시 버릴 게 많아서, 오히려
아쉽기보단 흐뭇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이라는 한계도 애매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라는
방향성을 가진 삶이려면
우리의 애착 습성과도
서로 양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습성을 무시하는 게
스트레스가 될 바에야,
갖고 싶은 게 있고,
그걸 가질 수 있을 때
갖는 게 나쁠 것도 없겠다 싶습니다
버리기로 작정하고 갖는 것 말입니다
안 그래도 모든 건 버려질 테니까요
(우리 자신의 허풍을 생각하면
버릴 때가 온다는 걸 알면서
영원할 거라고 큰소리치는 건,
솔직히 말해, 엊그제 시작한
사랑 밖에 없습니다)
"갖고 가지도 못할 걸 그리
골머리를 앓으면서 챙겼는지..."
우리에게는 '제멋대로 산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말은 멋져도, 유전자와
그 시대에 따른 역할뿐입니다
그 가운데 행복에 관한
개념을 가진 동물인 우리를,
뒤에 남겨지는 이들이
아무리 비웃어도,
그 행복이나 즐거움은 결국
내가 느껴야 하잖아요
이것을 가졌든 저것을 가졌든,
기회가 있어 그 둘을 가졌든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할 바엔
가진 것과 갖지 않은 것의 구분은
별 의미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편의점에서
생각한 의미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가 아니라
'갖게 되느냐'입니다
말하자면, 살아 있기에
만나는 모든 것, 운명 말입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
그 태어난 곳이 우리나라인 것,
초등학교의 한 구석 철봉대에서
평생을 이어가는 한 친구를 만난 것,
드럼통으로 만든 연탄 화덕이 놓인
맛있다는 고기구이 집에서
건너편에 마주 앉은 그에게 빠져
여섯 해를 정신없이 살다가
십여 년에 거쳐 사랑을 이해하게 된 것,
이 모든 것도 우리는
운명으로 묶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이 재주가 의미 있는 것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지
않기로 하는 데에도 쓰이고,
어떤 것이든 세상사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에도
핑계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흔히 '산다'라고 하지만,
그 표현은 기실 건방집니다
적확하게 말하면,
'살게 된다'가 적절한 겁니다
태어나는 게 아니라, 태어나게 되고
죽는 게 아니라, 죽게 됩니다
사랑조차, 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거기 빠지게 되지 않던가요
삶이 내게,
'네가 그렇게 살았잖아!'
내 책임을 물으면
견딜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살려니까
사회의 틀에 맞추려고
'너' 또는 남들 탓을 하면서
줄곧 자신의 정당성을 얻으려고
'나' 아닌 것에
책임을 묻지 않나 싶습니다
미시적으로 보면
내가 내 길을 선택하는
삶의 주체인 듯합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살피면
환경과 조건에 맞춰
갈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종속적 삶이 보입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인데,
이와 달리, 삶이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기도 한 겁니다
어떤 관조자가 있어, 말하자면,
신이 있어 그가 내 삶을
부각俯角으로 내려다보면
운명을 우연으로 치고 싶어 하는
가엾음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필연인 듯해도
그들이 우리 곁에 모인 과정은
우연으로 채워진 듯하고,
그래서 우연이 우리를 삶의
불확실성 속에
가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웅장하든 소소하든 모든 집의
불 켜진 창문 안의 타인의 삶은,
운명밖에 가진 게 없는 관조자의
풍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창문 역시 제삼자에게는
운명적 풍경 2를 그리고 있는
스크린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나 관조자가 아닌 '나'는
우연도 갖고 있어서, 그 둘을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 쓰고 있습니다
가치도 변하고 관념도 변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을
나름대로 소화시켜서
원래 내 것인 양 시위하면서 삽니다
세대에 따라 내가 놓인 그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다르고
거기 대처하는 우리가 다를 뿐입니다
미니멀 라이프이건, 맥시멀 라이프이건
그 삶을 내 것인 양 할 수 있다면
내 것이라고 주장해도 될 겁니다
아무래도 산다는 게 그 주장대로
실천할 수 없도록 할 테니까요
그래서, 너그럽지 못해서 생기는
불면, 불안, 우울 같은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당신이 할 수 있어서
전봇대로 이를 쑤시며
요란하게 산다 해도,
이게 중요한데,
'그 전봇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한'
나는 당신을 응원할 겁니다
당신이 내게 우연이거나,
운명이라고 해도,
나를 사랑하게 되거나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것도
당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