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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Apr 18. 2020

다른 사람에게만 친절한 사장님

오래 보고 나서야 이쁜 줄 알았다.

토요일 아침  다음 주 먹을 식재료를 사기 위해 식자재 마트에 간다. 다른 것은 도착해서 구입을 하는데 정육만큼은 미리 주문을 해 놓는다. 정육코너 사장님이 그렇게 안 하면 시간 안에 해 놓을 수 없으니 꼭 그렇게 해달라고 무섭게 부탁을 하셨다.


무섭게 라는 말을 왜 했는가 하면 전화를 받으실 때도 무뚝뚝, 대면을 해도 무뚝뚝, 무슨 말을 해도 무뚝뚝하신데, 말투가 조금 무서운 무뚝뚝이다.


마트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 차에 싣고 정육코너로 가서 "사장님 저희 것 다 되었나요" 물으니  힐끗 쳐다보고는 머리만 도리질 친다. 조금 뒤에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뒤돌아 섰는데


"어서 오세요"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빛처럼 빠른 속도로  '뭐야 사람 차별하네, 우리가 여기 다닌 지 5년이 넘어도 일관되게 무서운 무뚝뚝이께서 어떤 사람에게 저렇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한술 더 떠서 "커피도 드세요"한다.


어,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차별이 심하다. 살짝 불쾌한 마음도 든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모른 체 하고 갈까 하다가 어느 분께 저런 대접을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등을 돌려 정육코너를 째려보았다.


사장님과 내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는 척이라도 하려나 했는데 그 사장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하던 일을 한다. 그 앞에는 옷차림이 수수한 할아버지께서 커피믹스를 한주먹 호주머니에 넣고 계신다. 박스 수거하시는 중이란걸 알아차렸다. 순간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나도 원래 자세로 돌아가 남편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저기 정육코너 사장님 엄청 이뻐! 박스 수거하는 할아버지께 커피믹스 한주먹 주셨어"라고 일러 주니 "당신도 저 사장님 한테 음료수 좀 사다 드리지" 한다.


음료수 몇 병을 샀다. 정육점 사장님께 건네 드리며"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했더니 "네" 짧게 대답하신다. 역시 일관성이 있다. 무뚝뚝한 어투다. '사장님 이뻐요, 계속 무뚝뚝하셔도 괜찮습니다. 사람 차별하셔도 좋습니다.' 속으로만 인사했다. 우리는  카운터 여사님께, 물건 나르시는 삼촌께도 음료를 나누어 드리고 정육코너 사장님으로부터 사람을 차별해도 기분 좋은 마음을 얻어 왔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종종 있다. 평소에는 과격하고 말투도 험한데 당신보다 불쌍한 사람에게는 뭐라도 주려는 사람, 자신에게는 검소한 소비를 하시면서 어려운 분들께 드리는 것 아끼지 않는 사람 말이다. 속을 모르고 대할 땐 오해를 한다. 과격해, 무서워, 자린고비야 이런 판단을 하다가 무심히 하는 행동들이 저절로 웃음 짓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 정육코너 사장님 뵌 지 6년째인데 이쁜 것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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