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거의 다 가고 있다. 날이 좀 풀렸다 싶으니 마당에 여러 종류의 새들이 다녀가곤 한다. 얼마 전에는 참새보다 약간 큰 검은색 바탕에 주황색, 하얀색 무늬가 있는 새가 다녀갔다. 유난히 통통한 것을 보니 꼭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봄이 되면 알을 낳을 것 같은 그 새는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지 않을까?
요즘 나는 10년이 다 되는 오래된 집안 곳곳에 쌓인 묵은 때들과 말없이 대치 중이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니 봄이 오면 청소를 할 곳이 수두룩하다. 오늘은 입춘이라는데 봄이 코앞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본다.
내 기억 속에 이사 오고 처음 봄맞이 때와 두 번째 봄맞이 때를 제외하고는 청소 기억이 거의 없는 창문 유리. 어렴풋이 남편도 한 번은 닦았던 것도 같고, 중간에 나도 닦았던 것은 같은데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는 그 적은 횟수에 게으름을 탓해본다.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살 것이니 이번 봄에는 꼭 닦아보자.
어느 틈엔가 보이고 있는 화장실 천정에 검은 점들. 층고가 높다 보니 정확히 무엇인지 가늠은 안 되는데 얼핏 설핏 그 검은 점 사이에 거미줄이 얽혀 있는 듯하다. 하얀색 수성페인트로 천정을 마감한 터라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 수성페인트를 물걸레로 닦다 보면 색이 변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꼭 창문 유리 닦으면서 저것도 닦아야겠다.
우리 집은 외벽 일부가 나무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1년에 한 번 이제는 2~3년에 한 번 우리가 직접 오일스테인을 칠했는데, 이젠 나무 홈 사이사이에 오일스테인이 들떠 칠한 곳이 막을 형성해서 그 막 전체가 벗겨지고 있다. 아이고, 이제 셀프 도색에는 한계가 있으니, 사람 불러서 오일스테인을 다 벗겨내고 칠을 다시 해야 할 듯하다. 나무로 외장재를 쓰는 것은 예쁘기는 하나, 이렇게 2~3년마다 칠을 해야 하고 10년쯤 되니 전면 벗겨내야 하는 작업들을 해야 해서, 집을 새로 이사할 때는 꼭 외벽이 나무인 집은 걸러야겠다. 그렇다고 살고 있는 동안은 외벽을 바꿀 수 없으니 깨끗이 보수해서 살 수밖에…….
슬슬 날이 따뜻해지면 데크도 정리를 해야겠다. 데크 한쪽 면에 커다란 철재 선반 위로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데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함을 이용해 지저분한 것을 안 보이게 해야겠다. 우리 집 마당에 흠잡을 것 중 하나가 데크 선반 위로, 이번에는 꼭 신박하게 정리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이 깊어가고 있다. 따뜻한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면서 별로 실천력이 없는데도, 계획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봄에 과연 생각한 것을 다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룩진 거실 창문에서 햇살 받으며 멍하니 있어도 아무 지장 없고, 마당 한편 선반이 지저분해도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는데 아무런 해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계획을 세워본다. 봄이 오면 이것저것 정리한다는 계획을. 난 그냥 봄이 오는 게 좋은가보다. 추운 겨울 갇혀 있는 듯 한 기분보다는 창문 열어 서늘한 바람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때가 오기 때문 아닐까 싶다. (아! 그전에 방충망도 닦아야겠다.)
계획만 세우지 말고 꼭 이번 봄맞이는 산뜻하게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앞으로 15년은 족히 더 살아야 하니 한 해 한 해, 잘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렇게 다시 나를 북돋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