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을 단어들을 문장들을 긁어내고 뿌려 놓고 그러모아 문단이라는 걸 만든다 물론 여기서의 이름은 문단은 아니고 연이고 문단과 연은 물론 줄 바꿈의 횟수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짤막한 단어들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부유하다가 간신히 내 손가락 끝과 자판을 거쳐 화면과 디스크에 안착한다
할 말이 없고 써낼 글도 없고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는 원망이나 질투나 사랑이나 분노나 시기나 슬픔이나 억울함이나 희열이나 그리움 정도만이 나의 남은 밑천일 때
나는 시를 쓴다
그게 시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과 행과 연을 갖춘 글을 쓰니 그것은 어찌되었든 시가 될 것이므로 잘 썼는지는 아무렴 상관 없다
어쨌든 시는 시였다
나는 마지막 남은 밑천을 어떻게든 글로 남기고자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밑천에 대한 존중인지 밑천을 박박 긁어 꺼내어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감정들은 사소하고 절박할수록 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는 시이고
나는 왜 시를 쓰나 그건 무슨 의미가 있나 뱉어내는 말들은 어디에 가서 닿나
시는 왜 쓰나 그건 무슨 의미가 있나 입으로 손으로 싼 말들은 어디에 가서 닿나
아무렴
시는 시이고
시는 또 시이고
시는 시일 것이고
시는 또 시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