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룩 Jun 11. 2023

식물을 선물하는 일에 대하여

봄이 오고 있다. 빌라 단지의 나무들에서는 아마 라일락으로 추정되는 꽃눈이 올라오고, 이따금 걷다 보면 산수유 꽃도 보인다. 사철나무는 새 잎들을 틔워내고, 이름 모를 수많은 풀들이 화단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꽃보다 내게 더욱 봄처럼 느껴지는 건 한 다육식물이다. 넓고 길게 뻗는 잎을 지닌, 아주 납작한 알로에 같기도 한 산세베리아의 한 종류인 문샤인. 처음 집에 왔을 때만 해도 가장 큰 잎이 내 손보다 짧았는데, 이제는 화분이 작아 보일 정도다.


특히 튼튼히 뻗는 잎 옆에서 돋아나는 새순은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아주 연한 초록빛의 잎에서 가장자리만 색이 꽤 진한 이 새순을 보고 엄마는 무순이 떠오른다고 했다. 연하고 얇은 잎들이 겹겹이 동그랗게 말려서 뾰족하게 올라오는,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 모습. 꽃과 달리 시들지 않는 그 힘.


문샤인이 처음 찾아온 건 2년 전의 생일이었다. 3년 전 가을쯤부터 집에서 식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인스타그램에 식물 사진을 종종 올렸으니, 친구는 그걸 보고 내게 문샤인 하나가 자라고 있는 화분을 선물로 준 것일 테다. 친구의 마음도 고마웠고, 도착한 문샤인의 자태를 보면서도 기뻤다.


하지만 이따금 문샤인의 잎은 쪼글쪼글해졌다. 이 녀석이 담긴 작은 화분과 그 뿌리가 자리 잡은 보슬보슬한 갈색 흙, 동남향의 창문과 주변 식물들에 주는 물로 인해 변하는 습도와 같은 것들 사이의 관계를 하나하나 계산하긴 나로서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그런 변수들을 염두에 두고 문샤인과 함께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작년에도 식물 하나를 선물 받았다. 수경재배용 행운목이었다. 당연히 고마웠지만, 이 녀석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걱정이 앞섰다. 이미 집에는 화분이 너무 많았고, 나는 바빠서 식물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빠 덕에 식물들은 무사했지만, 그래도 그날의 선물은 내게 기쁨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지내고 있지만,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다.


그때 확실해진 건, 때로 선물에는 의도치 않게 의무나 책임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그것이 살아있는 무엇일 때. 눈이 쌓인 차의 창문에 영어로 ‘동물은 선물이 아니라 15년의 약속/헌신이다’라는 문장을 적어둔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반려식물을 고민할 때 의무나 책임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문득 둘째 큰아버지께 선물로 드린 소엽백자단이 떠오른다. 관리를 잘못해서 가장 큰 줄기에서 위의 절반을 잘라내고 다시 모양을 다듬어야 했던 그 녀석을 나와 아빠는 둘째 큰아버지의 새 일터에 선물로 두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정해두고 관리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과연 그 녀석은 지금도 잘 있을까. 미리 상황을 묻지 않고 소엽백자단을 선물로 드린 건 누구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우리가 그와 함께 쌓아갈 수 있었을 어떤 기억들은 섣불리 결정한 선물이라는 행동과 함께 사라진 것 아닐까. 


식물을 집에 들이는 일은 그를 돌본다는 책임을 안는 일이기도 하다. 동물을 들일 때 때 거주 형태와 자신이 집에 있는 시간 등을 고려하듯, 식물을 기를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깊은 관찰과 일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책임을 식물과의 삶 안에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317


이전 19화 이름 모를 나무는 철망을 휘어 놓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