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룩 Aug 26. 2023

텅 빈 화분들


시작은 분재였다. 집에서 대형마트를 오가는 길목에는 서오릉이 있고, 거기에는 화훼단지가 있다. 식물로 가득한 적절한 습도의 비닐하우스가 길가에 줄지어 있다. 식물을 기르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식물에 빠진 건 그곳의 한 가게에 들어갔다가 본 분재들 때문이었다. 겨우 한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도 완전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식물들이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옆 가게를 둘러보다가 예쁜 식물들에, 그리고 식물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결국 첫 분재를 들이게 되었다.


그저 분재를 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분재를 사면, 분재를 만들고 싶어진다. 사장님은 분재 화분에 흙을 3층으로 구분했다. 가장 밑에는 배수가 잘 되는 흙을, 중간에는 뿌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흙을, 그리고 맨 위에는 깔끔하게 화분을 마무리할 수 있는 흙을 썼다. 사장님은 각각 한 봉지씩 흙을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나는 식물과 화분, 그리고 흙이 생긴 우리는 집에서 분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분재가 되지 않은 식물들을 사서 분재로 만들었다. 원래 화분에서 뿌리를 뽑고, 물로 깨끗이 씻고, 새 화분 크기에 맞게 뿌리를 잘라준다. 그리고 화분에 배수 잘 되는 흙을 깔고, 뿌리를 올린다. 그리고 뿌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흙으로 뿌리를 덮는다. 나는 약간 굵은 나무젓가락 하나를 가져와서 흙을 군데군데 찔러 주었다. 이건 흙과 뿌리를 더 촘촘히 결합시켜서 그 사이의 공기를 빼주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위에 흙을 덮고, 물을 흠뻑 적셔 준다. 그리고 (반)음지에서 뿌리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


몇 달 동안 나는 분재에 푹 빠져 살았다. 아주 작은 편백나무인 청짜보, 향나무, 피라칸사스(혹은 피라칸타), 그리고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식물들을 분재로 만들었다. 식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너무 많이 길렀고, 이제는 없다는 뜻. 동물이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집에서 기른 식물은 화분을 남기는 걸까. 베란다에는 텅 빈 화분들이 쌓여 있다. 모종을 사올 때 받은 얇은 플라스틱 화분부터, 마음을 많이 썼던 식물들이 집으로 삼았던 도자기 화분들까지.


고백하건대, 초기에 만든 분재 중 남아 있는 것은 몇 없다. 나와 아버지는 서오릉에서만이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나 식물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식물을 사기도 했는데, 튼튼하고 잘 자란다는 피라칸사스도 지금은 없다. 청짜보도 하나 빼고는 어느새 사라졌다.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 사랑, 망각, 보살핌, 방치의 흔적.


식물을 그냥 기르다가 실패하면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분재가 죽으면 내 책임이 더 커진다. 분재는 사람에 대한 식물의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먹고 남은 씨앗을 기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 미감에 맞게 식물을 기르기보다, 식물들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아졌다. 매일 열과 성을 다해서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반드시 식물을 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비어 있는 분재 화분들을 채우지 않는다고 식물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뜻은 아니리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921


이전 20화 식물을 선물하는 일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