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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n 11. 2023

이름 모를 나무는 철망을 휘어 놓고

내가 잠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할 때면, 아버지는 학교 바깥에 차를 대고 기다리며 주차비를 아끼곤 한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는 차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며 나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내게 이것을 꼭 보여 주어야겠다며 사진까지 찍어 두고, 위치도 기억해 두었다. 나무가 철망을 뚫고(?)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말 그대로였다. 마름모 모양의 구멍들을 두고 철망이 꼬아져 있는 울타리 중간에 나무가 자라는데, 철망 사이로 줄기가 올라오면서 울타리를 변형시키고 있었다. 


며칠 뒤, 또 학교 도서관을 들를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나온 뒤에 그 모습을 직접 보기로 했다. 아버지를 따라 간 곳에는 사진에서 본 그 모습이 그대로 있었는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 모습이 함께 보여서 그 장면이 더욱 강렬했다. 철망에는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알리는 팻말이 걸려 있었고, 철망과 학교 벽 사이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공간에는 온갖 식물들이 한가득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있었다. 주변의 다른 식물들도 철망을 타고 올라가는 경우들이 있었다. 식물들은 주어진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뿐 아니라, 그 환경을 새롭게 구성해낸다.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자라난 소나무가 그 공간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 버리는 것처럼. 학교 근처 철망에서 만난 이 나무가 바로 그랬다. 철망을 타고 가지를 뻗어내는 나무들이 철망과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이 나무는 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었다. 그는 철망을 끊어내려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식물에 엉켜 있는 경우는 식물이 있는 자리에다가 그대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일 텐데, 이건 반대였다. 물론 한국의 많은 땅이 그렇듯 그곳에도 애초에 식물이 있었겠지만, 이들은 원래 있던 식물들을 뽑고 자르고 밟은 뒤 철망으로 울타리를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곳에 나무가 싹을 틔웠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굵은 나무인 것을 보면,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 분명하다. 


철망은 나무를 구속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나무가 철망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밀어내고 있다. 철망의 일부분은 휘어서 나무에 감겼고, 나무는 그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철망 사이로 줄기를 뻗어 올렸다. 나무가 집어삼킨 철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색깔도 나무의 껍질과 비슷해진 것 같았다. 적어도 그 구간만큼은, 나무와 철망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했다. 


나무와 철망 사이의 아주 오래되고 고요한 힘겨루기를 보고 있으면 자연이 문명의 내부인지 외부인지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와 외부 같은 건 없다. 그저 어쩌다 맞닿고 밀어내고 휘어지고 뻗으며 자라나는 서로가 있을 뿐이다. 이 이름 모를 나무와 철망처럼. 사진을 보면 볼수록, 이 힘겨루기의 끝에 나무와 철망 중 하나가 남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에 말려 온통 휘어진 철망은 이제 울타리가 아닐 것이다. 어쩌다 하필 그곳에서 그 방향으로 자란 나무와 철망의 만남으로, 비로소 무언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장면이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자연과 문명의 울타리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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