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 Boys, be ambitious. Girls,

be lonely. 외롭자, 우리.

by 다운
To live is the rarest thing in the world. Most people exist, that is all.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 오스카 와일드


외로움은 사랑이 부재한 흔적이다. 그것은 영리한 동시에 치명적이다. 마음 표면에 난 작은 균열, 그 빈틈을 절대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삽시간에 마음 전체를 잠식한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 외로움은 성욕과 결부된, 미디어로 말미암아 형성된 일종의 이미지였다. 외로워. 누군가 외롭다고 말하는 건 소개팅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게 외로움이라면 나는 외롭지 않아. 외로움이 뭔지도 몰라. 외롭다는 건 어떤 기분인데? 지금 당장 섹스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


그렇게 계속 뒷걸음치며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나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를 벌렸다.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에 대해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외로웠다. 단 한 순간도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에겐 ‘나’가 없었고, 그렇기에 나를 향한 ‘사랑’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본래라면 사랑이 자라났을 자리에 뿌리를 뻗은 것은 ‘내가 아닌 나’였다. 외로움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상상의 산물이었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아이들은 자고로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꿈은 가수였다.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러나 그것은 그 허상의 목소리에 따르면 야망과는 거리가 먼 꿈이었다. 내 꿈은 어른들의 검수와 수정을 거쳐 고등학생 때쯤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어느 학과에 내는 자기소개서라도 전공에 맞춰 화려한 포부를 꾸며낼 수 있는 편리한 꿈. 그러면서도 야망이 넘치는 꿈. 그러나 야망을 가지란 건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남자아이들을 향한 말이었다. 내가 요구받았던 건 언제나 ‘단정하고’, ‘성실하고’,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뿐이었다. 야망이라는 단어는 없는 집에서 태어난 막내딸인 내게 허용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예쁘고 말 잘 듣는 아이’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충실하게 그 말을 따랐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두 번 바뀌고, 세 번 바뀔 때까지도.


Boys, be ambitious. 그래, 야망을 가져라. 하지만 그들의 야망은 왜 항상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했던 걸까. 엄마는 내게 (지나치게) 자주 말했다. “너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흉봐.” 나를 흉본다던 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도대체 어디에 사는 누가, 어떤 사람들이 나를 비좁은 틀 안에 그리 오랫동안 가둬두었던 걸까.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풀어주지 않고 있는 걸까.


그들이 말하는 외로움에 내 지분은 없었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도록 허용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자라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기만의 방’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생긴 나만의 작은 방은 문을 닫아서는 안 되는 방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내가 문을 닫아 놓으면 엄마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왜 문을 닫아 놓았냐고 물었다. 나는 문을 닫아서는 안 되었다. 나는 엄마의 딸이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가족은 언제나 함께니까. 함께 있다는 건 모든 방문이 열려 있고 같은 집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고 산다는 뜻이니까. 가족 사이에 비밀 같은 건 없어야 하니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속박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혼자여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에게 기대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완전한 사람이 된다고. 이제는 (사실 존재한 적도 없었던)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독립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진정한 독립은 외로움을 견딜 줄 아는 데서 시작되고, 그 외로움이 이윽고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첫걸음이 된다고. 내가 기어코, ‘굳이’ 혼자 살기 시작한 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나의 모습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내가 모르던 ‘나’가 이 안에 얼마나 많이 살고 있었는지.


Girls, be lonely. 몰려오는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외로운 줄도 몰랐던 나에게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외로워야 한다고. 그 외로움이 결국 너를 자유롭게 할 테니까. 진정한 야망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방에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삶을 써내려 가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삶,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야망인지.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진정한 야망이란 남들이 정해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는 용기임을.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나’만의 슬픔과 아픔을, 그것만을 오롯이 느껴야 한다. ‘나’를 비로소 찾은 후에서야 삶은 시작될 수 있으니까.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살아서 역동하는 삶이. 기어코 자신만의 고독을 즐겨내는 삶이. 그 고독 속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야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로워야 한다. 외로움이 우리의 축복이 될 것이므로. 그리고 그 축복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므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