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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Dec 08. 2018

느리게 전하는 고백

김동률의 러브 내러티브

김동률은 언제나 조심스레 운을 뗀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밥은 잘 먹었냐고,

지난 우리를 생각해봤다고,

만약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싶었다고.


그가 늘어놓는 서사는 구구절절하다.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아픔이다. 멋대로 열심이었던 사랑은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막막한 후회는 빛바랜 행복을 건져내 무심결에 지나쳤을 마음을 휘적인다. 이윽고 해맑은 웃음 뒤에서 일렁였던 아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픔.

웃음으로 대신했던 상처.

 

그렇게 낯설고도 새로운 과거가 떠오른다.


왜 세심한 배려는 뒤늦게 모습을 나타낼까. 만약이라는 말은 한없이 부질없다. 제대로 시간을 부여잡지 못한 이에게 묻어나는 구차함일 뿐이다. 그래도 하고픈 말은 여전히 많다. 달라질 건 없지만 무거운 그리움만큼은 어떻게든 덜어내고 싶으니까. 마침내 그는 그녀가 듣지 못할 고백을 천천히 읊조린다.


아니, 너무 늦어버린 반성을 고하는 것이다.


성큼 다가온 이별을 좀 더 빨리 직시했다면 어땠을까. 설령 답을 모르더라도 하루라도 더 일찍 네 앞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모든 것을 주기 전에 하나라도 제대로 전해줬다면 어땠을까. 사랑을 잃은 이는 애써 흐린 흔적을 지켜내려고 한다. 수많은 만약을 되뇌이는 것. 김동률이 이별을 유예하는 방법이다.


그는 멈추지 않고 깨닫는다. 소심했던 날들을 모아보니 결국 너를 잃었다고. 마냥 즐거워했던 내가 참으로 미웠겠노라고. 이랬다면 널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었겠다고.


하지만 과감하게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네게 전할 답장은 하루 더 미뤄야겠다고. 너를 잃을까봐 미안하다는 말조차 다시 삼킨다고. 그는 끝내 자신할 수 없다. 그가 확신을 지닐 수 있는 건 사랑하는 마음 뿐이다. 남은 건 그걸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다.


두려움은 여전히 선명하고 앞에 없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낯설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로든 움직여야만 한다. 그렇게 김동률은 언제나 고백을 선택한다. 오직 진실한 마음만 남은 고백 말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김동률의 가사는 처음과 끝만 보면 된다.


<답장>의 처음은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끝은 "사랑해 너를"이다. 결국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6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아픈 마음에 확신을 담기까지 끊임없이 되묻고 또 되묻는 것이다. 금이 가버린 만남을 깨버리고 싶지 않은 간절함에 그간 늘어놨던 후회와 반성은 서서히 애틋해진다. 그립지만 체념해야 한다는 걸 아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허락된 마음이니 말이다. 그에게 사랑은 가장 어려운 일이자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다.


언제나 김동률은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끝내 쓰고 지우길 반복하는 이별들에게 말한다.


복잡한 마음을 가득 채운 말들을 다 꺼내라고.

마침내 남은 한마디가 사랑일 때까지.

그제야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에 자격이 생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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