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가워지면서 탄천은 활기가 넘친다. 지난봄 다른 곳으로 떠난 물새들이 탄천을 다시 찾는다. 추워지는 만큼 녀석들의 숫자도 늘어난다.
오리들은 종별로 대여섯 마리 정도씩 몰려다니며 영역을 구축하고 왜가리는 늘어난 오리들이 불편하다는 듯 왝! 액! 거리며 물을 휘젓고 다닌다.
무리 지어 다니는 오리들을 보면 지난 2018년 봄부터 여름까지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들이 떠오른다. 어떤 오리 가족, 11 마리 새끼 오리들과 그들의 어미가 주인공이다. 녀석들은 내가 습관처럼 산책하던 탄천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자연의 오묘함과 냉엄함 그리고 모성애와 가족애를 느꼈더랬다.
탄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시작해 성남시를 지나 송파구와 강남구 사이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총길이는 35.6km이고 그중 약 25km 구간이 성남시 중심부를 지나간다. 난 거기에서도 분당구 구미동에서 정자역을 지나 수내역을 거쳐 서현역 근처까지의 구간을 주로 다녔다.
2017년 여름쯤부터 탄천의 오리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을 계속 지켜보다 보니 그들에게서 질서가 보였고 살아가는 지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사진과 글로 SNS에 올리는 게 내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물새들 생태에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관련 자료도 찾아보았다. 덕분에 오리들이 4월에서 7월 사이에 번식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18년 5월 초부터는 은근히 새끼 오리들을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자세히 살펴보며 다녔다. 사진으로만 본 새끼 오리들은 앙증, 귀염, 이쁨 그 자체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5월 중순에, 정확히는 2018년 5월 15일 밤부터 폭우가 내렸다. 뉴스에서도 "5월에 이례적인 폭우"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베란다가 깨지나 싶을 정도로 들이붓는 비였다. 핸드폰에 재난경보도 떴다. 그 정도로 비가 내리면 탄천은 범람했었다. 탄천에 물이 넘치면 산책로는 물론 둑방까지 물이 차오를 게 분명했다.
걱정됐다. 당시까지 목격하진 못했지만, 어디선가에서는 오리가 산란해서 알을 품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곳에서 둥지로 들어오는 물 때문에 어미 오리들이 안간힘을 쓰는 게 보이는 듯했다.
날이 밝자마자 탄천으로 나갔다. 이미 모든 진입로에는 노란 통제선이 처져 있었다. 평소 즐겨 건너던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물살이 빨라지는 급류로 변했다. 산책로와 넓은 잔디밭까지 잠겼다.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서 탄천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신발과 옷은 흠뻑 젖었다. 우산도 소용없었다. 다행히 오전부터 비는 잦아들었다. 오후에 산책로에 물이 살짝 빠지자 다시 나가보았다.
멀리서 본 탄천과 가까이서 본 탄천은 소리부터 달랐다. 물이 흘러가는 진동과 소음이 함께 느껴졌다. 상류에서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난파된 배처럼 흘러왔다. 저기에 오리들이 휩쓸린다면? 그럴 리 없다. 야생에서 뼈가 굵은 오리들은 비가 굵어지자 안전한 뭍에 올라왔을 것이다.
진짜였다. 분당 주택전시관 인근의 기슭에는 오리들이 올라와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오리는 물에 잠긴 물억새 덤불 사이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에 잠긴 덤불은 오리들에게 안전한 이동로였다.
그곳에서 보았다. 어미의 꽁지깃 가까이 붙어 일렬로 이동하는 새끼오리들이었다. 순간 호흡이 멈추는 줄 알았다. 그 조그만 털 뭉치들이 기를 쓰고 헤엄치는 모습이라니. 한동안 따라가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나마 잔잔하게 흐르는 곳에 다다르자 녀석들은 물살을 헤치고 건너편 기슭으로 건너갔다. 나중에 카메라를 확인하니 제대로 찍힌 게 없었다. 초점이 안 맞는데 흔들리기까지. 그렇지만 지난 몇 달간의 바람을 이룬 날이었다.
밤새 내린 폭우를 견디고 알을 깨고 나와 안전하게 탄천까지 이소를 한 새끼오리들과 그 11마리들을 이끈 어미가 대견했다. 그날의 그 기억 때문에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탄천에 나갔다. 그렇게 100여 일을 탄천에서 그 오리 가족과 만났다.
그 100여 일이 행복했다. 때론 새벽에 때론 저녁에, 시간이 허락되면 항상 탄천으로 향했다. 탄천 산책은 나도 모르게 나의 가장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야생의 오리들을 쫓아다니며 관찰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린 새끼를 보호하느라 이동 시간 외에는 덤불에 숨어 지내기 때문이다. 숨어 있으면 절대 볼 수는 없고 산책로를 오르내리다 이동하는 모습을 운 좋게 목격하게 되면 그때부터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어린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항상 붙어 있는 어미와 어느덧 크기가 비슷해졌을 때의 그 대견함이란. 그렇지만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본 건 아니었다.
처음에 11마리를 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상상을 했다. 사냥당했을까 아니면 아팠을까. 탄천에는 너구리, 고양이, 맹금류 등 포식자도 산다. 2018년 가을쯤 마지막으로 카운트했을 때 여섯 마리만 남았었다. 형제자매들이 사라져도 녀석들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런 그들 옆에는 항상 어미가 있었다. 엄마가. 그녀의 헌신적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항상 주변을 살피며 새끼들만 바라보던 그녀의 등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마음을 붙이다 보니 어느덧 100여 일을 넘게 지켜보았다. 물론 탄천에는 이들 말고도 많은 생명이 살고,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을 모아서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매년 연말이면 "올 한 해 유독 힘들었다"라며 서로들 위로한다. 동물들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는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