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이 있다. 책이 워낙 많아서 헌책방을 불러야 했다거나 마루가 내려앉아서 집을 새로 지어야 했다는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자전적 산문이다. 저자는 괴롭다고 했지만 난 자랑으로 읽혔다. 난 저자가 무척 부러웠다.
나는 돈 많은 사람보다 책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돈이 없어서) 검소한 나에게 사치가 하나 있다면 그건 책을 사는 것이다. 아내는 철마다 책을 한 무더기 사는 내게 “차라리 옷을 사 입어”라고 한다. 그렇다고 책이 엄청 많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략 세면 수백 권이 넘고 많아도 1천 권은 넘지 않는 정도다.
숫자가 많고 적음은 상대적이다. 누구에게는 1천 권이 많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많지 않은 숫자일 수도 있다. 책을 모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면서 왜 아직 1천 권도 모으질 못했느냐 하면 그동안 책을 많이 버렸기 때문이다.
버린 책들을 모두 세어보면 수천 권은 넘을 것이다. 어쩌면 1만 권이 넘을 수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빼고 내 반백 년 삶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세 번 당했는데 모두 책을 버리게 된 사건들 때문이었다.
책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왜 책을 버렸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시국 때문이었다고 대답하겠다.
첫 번째 사건은 내가 군대에 가자마자 벌어졌다. 난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계획도 없던 군대에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책을 정리했다. 편지에는 이사 때문에 책을 조금 정리했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첫 휴가 때 넓어진 집만큼이나 황량해진 내 책꽂이를 보고는 내 오랜 친구들이 연락도 없이 사라진 아픔을 느꼈다. 용돈을 아껴 한 권 한 권 산 ‘계림문고’는 물론, 1974년부터 모아온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그리고 ‘보물섬’까지 사라진 것이다.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은 사라진 친구들 뒤에 숨겨놓았던 책들과 유인물들, 당시 정권이 불법,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인 그 책들과 유인물까지도 싹 사라진 것이다. 그 자료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쩌면 198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을 텐데. 가족들은 막내아들이 그 종이쪼가리들 때문에 이상해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책들이 있었는데 두 번째 사건을 겪으며 그 아이들도 사라졌다. 1990년 중반 즈음, 나와 아내는 몇 년간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쓰던 가구와 가전제품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있었지만 책들은 주변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전공과 관련한 책들은 학교 후배에게 보냈고 다른 책들은 처가의 시골 창고에다 두었다. 모두 잘 지낼 거라 무사할 거라 믿었는데. 몇 년 후 돌아와 보니 후배는 유학을 가서 연락이 끊겼고 시골 창고에는 물이 들었다. 소식이 끊긴 책은 어디서 잘 지낼 거라 믿으면 되지만 물에 빠졌던 책 상자를 보는 마음은 참담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그래도 난 책을 끊기는 어려웠다. 다시 한 권 한 권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년 모으니 책장이 모자라서 책상 위는 물론 바닥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 세 번째 사건이 터졌다.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집을 줄이게 되었다.
집을 줄인다는 건 이삿짐을 줄여야 한다는 거다. 당시 우리 집에서 짐을 줄여야 할 순서에서 내 책들은 1번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변화였기에 내가 나서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난 <장서의 괴로움>의 저자처럼 헌책방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들은 책 목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 건 없다고 했더니 폐지 수집상에 알아보라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책을 다룬다는 사람들이 책을 그저 지저분하고 무거운 종이 더미로 여기고 있었다.
마침 어느 북카페와 인연이 닿았다. 문학, 경영 경제, 인문학, 자기계발서 등을 따로 분류해서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상자에다 한 권 한 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담았다. 헤어지기 정말 싫은 아이들은 따로 챙겼다. 내가 사랑했던 책들은 그렇게 1톤 트럭을 타고 떠났다.
그 순간을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찢어지고 눈에 습기가 차오른다. 이사한 후 허전해진 책장을 보면 내 마음도 허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는 건 역시 책밖에 없었다. 마침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어서 열심히 빌려보았다. 그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은 고민 고민하다가 한 권씩 샀다. 아내가 눈치를 주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또 시작했다. 책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서재가 따로 없었지만 책꽂이와 거실 테이블은 물론 올려놓을 수 있는 모든 곳에는 책들이 쌓여갔다. 책들이 집을 점령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책꽂이를 사주며 책이 눈에 띄지 않게 정리하라고 했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집이 좁다거나 불편하다는 이유 외에 서로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난 오랜만에 서재를 갖게 되었다. 아내에게도 그녀를 위한 공간이 새로 생겼다. 아내는 가구 배치를 수십 번 바꿨지만 난 책 배치를 수십 번 바꿨다.
장르별로도 꽂아보고 크기와 색깔별로도 꽂아보았다. 책을 책꽂이에 꽂으면 책등만 보인다. 시리즈로 나온 문학책은 디자인과 색상이, 정확히는 책등이 예쁘게 어울렸다. 번역이 맘에 들지 않아도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사게 되는 이유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내 뇌에 있는 사유의 공간과 닮은 것 같다. 책을 사던 당시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세상 흐름도 짐작할 수 있다.
2000년대, 일에 푹 빠졌을 때는 경제경영과 자기계발서를 많이 샀던 것 같다. 책을 새로 모으기 시작한 약 10년 전부터는 문학책이 많다. 그리고 사회 현상과 관련한 책들도 많이 보인다.
사회 현상에 관한 책들은, 산업 흐름에 대한 것과 세상을 보는 두 시선, 진보와 보수의 시각을 다룬 책들이 많이 보인다. 어릴 때는 읽지 않았던 과학 분야, 특히 동물생태학 책들도 여럿 보인다. 동화를 공부하는 지금은 아동문학 책들은 책꽂이를 따로 분류했다.
나도 <장서의 괴로움> 작가처럼 쌓이는 책 때문에 괴로워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처럼 후회와 고생을 하더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쩌면 난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책이라는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던 방금도 책장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