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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May 10. 2020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상실감에서 시작한 글쓰기

    비니. 16년을 함께 산 우리 집 개 이름이다. 녀석은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던 2002년 봄 우리 집에 왔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의 동생, 우리 부부에게는 막내와 같은 가족으로 16년을 함께 살았다.

   개에게 1년은 인간의 7년이라고 했던가. 서서히 나이 들어간 다른 가족과 달리 비니는 빨리 늙었다. 몸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기더니 고장 나는 곳도 생겼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녀석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한 난 깜짝 놀랐다. 가족이 모두 나가면 비니는 현관 앞에서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녀석이 현관에 마중 나오질 않았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집안을 살폈다.

   비니는 자기 집에 누워있었다. 내가 인기척을 내며 다가가도 녀석은 꿈쩍 않았다. 비니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맥없이 누워있길래 난 가슴이 철렁했다.


   “비니야.” 내 목소리는 떨렸고 녀석은 미동도 안 했다. 내 가슴은 더 뛰었다.

   “비니야.” 이번엔 살살 흔들며 불러보았다.


   화들짝. 비니가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난 녀석이 죽었을까 봐 한순간 황망했었는데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비니의 눈을 보니 가슴이 아파 왔다. 그렇게 맑았던 녀석의 눈망울은 언제부터인가 흐려져 있었다.

   비니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고 눈도 멀어져 갔다. 다리가 불편한지 산책도 거부했다. 녀석은 점점 가족들과 교감을 안 했다. 다만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자기만 했다.

    그렇게 비니는 마지막 2년을 고생하다가 죽었다.


   그 2년 동안 다른 가족들도 함께 아팠던 것 같다. 누워서 본능으로만 사는 늙은 개를 보살피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막상 비니가 죽자 슬프다기보다는 더 오래 끌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비니를 화장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와 난 녀석의 자취를 싹 치웠다.

   그랬다. 우리 마음은 홀가분했다. 아니, 그래 보였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비니의 마지막 2년이 너무 힘들어서 그 흔적을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후다닥 치우면 우리 마음도 새롭게 될 거로 생각했을까.


   그런데 양말 한 짝 때문에 나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비니가 죽은 그 주말에 난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래통을 열었다. 그런데 검은 양말 한 짝이 눈에 띄었다. 비니의 갈색 털이 묻어있었다. 그렇게 비니 흔적을 지우려고, 쓸고 닦고, 쓸고 닦고 했는데 양말에 비니 털이 남아있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비니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녀석의 흔적도 그리워졌다. 왜 그리 빨리 치우고 지웠는지 후회가 되었다. 앨범을 뒤져 보니 비니를 찍은 사진도 많지 않았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왜 그리 많은지.


박성열 화가의 <고목>


   사진은 많이 없더라도 난 비니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어였다. 첫 만남, 수술, 산책 등 수십 단어를 적어 내려갔다. 그 단어만 봐도 비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단어를 좀 더 긴 문장으로 옮겨 적었다. 비니를 처음 만난 날의 정경, 중성화 수술 후 녀석의 우울했던 모습, 탄천 산책할 때 비둘기 떼를 덮치던 순간 등. 그렇게 적다 보니 비니의 일생이 여러 편의 글이 되었다. 녀석은 내게서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된 것이다.

   그리고 펜을 들수록 비니와의 추억은 점점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내 글에도 힘이 붙는 걸 느꼈다.

   짧은 몇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졌던 글들이 차츰 맥락을 가진 이야기로 틀을 잡아갔다. 그 글들을 반려견을 키우는 지인들에게 보여주니 공감을 많이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글을 구체적으로 써보면 어떠냐는 조언도 해주었다.


   난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즈음 난 비니와 함께 산책했던 탄천을 홀로 걷곤 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탄천에는 흐르는 물과 철 따라 모습이 변하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이 있었다. 새들과 물고기들과 곤충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을 사냥하는 너구리 심지어 들고양이들도 모여들었다.

   어느덧 내 손에는 목줄 대신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난 내 눈으로 본 정경들을 사진으로 찍고, 집에 와서는 기억을 되살려 글로 적기 시작했다. 비니가 죽은 후 펜을 들던 버릇이 내게 글을 쓰는 근육을 붙여준 것이다.


   당시 탄천 정경을 소재로 수필을 써서 2018년 봄에 <월간문학>에서 ‘신인작품상’을 받았다. 덕분에 난 글을 써도 되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다. 그 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연재하는 시민기자가 되었고 <브런치>에서 수십만 조회를 일으킨 글을 쓰는 작가도 되었다. 간혹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 모두가 비니가 죽은 후 나에게 생긴 변화다. 내가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자 벌어진 변화. 비니는 내 글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거기서 비니는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며 뛰어다니는 강아지이다.




나무와 개가 있는 그림은 몇 년 전 어느 아트페어에서 우연히 본 그림이다.

박성열 화가의 '고목(162x112cm, oil on canvas, 2012)'.

화가도 코카스패니얼을 키웠을까.

아무튼 너무 마음에 든 그림이었는데 내가 갖기에는 너무 큰 그림이었다.

비니가 죽은 후 가끔씩 들여다보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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