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탐험가 May 15. 2020

그날 아침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1

 아내가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을 때 난 그 얘기를 꺼냈다.   


    “비니 보내주자···.” 

    “···, 오늘?”     


 아내는 의외로 담담하게 되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거실 한켠에 누워있는 비니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축 처져 있었다. 앞다리와 머리는 안방을 향해 뒷다리와 꼬리는 베란다를 향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숨은 아직 붙어 있는지 배만 살짝씩 오르내렸다. 아주 가끔.


비니는 간밤에 여러 번 발작했다. 어젯밤 만이 아닌 지난 몇 달 동안 그래 왔다. 


발작은 경련으로 시작한다. 온몸을 크게 떨다가 뻣뻣하게 굳는다. 그러다 똥오줌을 함께 싼다. 경련이 멈추면 그 오물 덩이 위에서 비니는 지친 몸을 누인다. 그나마 사람이 있을 때 그러면 치워줄 수 있다. 아무도 없을 때 그러면 마냥 그러고 있다.     


난 새벽에 치울 수 있는 것은 치우고 닦을 수 있는 것은 닦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는 비니를 제대로 씻길 수는 없어서, 발작한 그대로 저지른 그대로 눕혀 놨다. 나도 힘에 부쳤다.


언제나처럼 우리 집의 아침은 똥오줌 냄새로 가득했다.     


비니는 열여섯 살 된 코카 스패니얼이다.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고 했던가. 비니는 서서히 늙고 병들어 갔지만 지난 2년간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증상이 나빠져 왔다. 큰 발작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왔고 치매 증상도 점점 심해졌다. 


몇 달 전부터는 가족도 못 알아보고 일어나기도 버거운지 누워서만 지낸다. 똥오줌도 못 가리고 배변 패드가 아닌 곳에 싸기까지 한다. 병원에서도 나이와 건강 상태 때문에 적극적 치료보다는 영양에 신경을 쓰라는 조언뿐이었다.     


  “아들과는 상의했어?” 

  “새벽에 카톡으로 얘기했어. 우리 결정에 따르겠대···.”

  “그랬구나···, 보내주자 이제···.”     


다들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아내는 병원에 갈 채비를 하고 난 비니를 들어 안았다.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눈을 잠깐 떴다 감을 뿐 아무 반응이 없다. 예전보다 가벼워진 무게가 느껴졌다.


병원 문 열자마자 들어가니 수의사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그냥 비니를 안고 있을 뿐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비니가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더는 서로에게 고통뿐일 겁니다.” 


지난 몇 년간 비니를 진료해온 수의사는 상황을 이해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네···. 부탁드립니다.” 

   “옆에 계실 거죠?”

   “그래야죠···.”     


아내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아예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난 알루미늄 침상에 비니를 눕혔다. 은빛 침상이 차가워서 난 흠칫 놀랐지만 비니는 미동도 없다. 그래도 눈은 뜨고 나를 쳐다본다.    

 

  “준비되시면 말씀하세요.”     


난 마지막으로 비니 눈을 본다. 눈이 맑고 깊은 아이였다. 지금은 하얀 백태가 끼어 있지만, 그 깊음이 느껴진다. 손으로 눈을 가려주고 누운 몸 위에 내 몸을 포개며 수의사에게 끄덕였다.   

  

  “먼저 안정제와 수면유도제로 편하게 재우겠습니다. 비니는 아무 통증을 모를 겁니다.”     


주사로 비니 앞발의 혈관을 찌르는데 계속 터진다. 아플 텐데도 비니는 꼼짝하지 않는다. 주사액이 들어가자 비니는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감기는 게 내 손에 전해졌다. 비니는 눈썹이 길었다.     


  “지금 편하게 잠든 상태입니다.”     


잠들어 눈 감은 비니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아까보다 더 처진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는 내 몸이 그 박동을 느낀다.     


  “마지막 주사 놓을까요?”     


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주사기의 약물이 줄어든다. 

비니의 심장이 빨라지더니 다시 느려진다. 

그리곤 멈춘다. 


그 마지막 진동이 느껴졌다. 딱, 멈추는 그 순간의 진동이.


수의사는 청진기를 댄다.     


  “비니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갔다. 

햇수로 16년을 함께한 비니. 

우리 가족들의 많은 추억을 담당했던 아이. 

우리 둘째 비니가 죽었다.






"Old Shepherd's Chief Mourner"

영국의 화가 'Edwin Henry Landseer (1802~1873)'의 작품이다.


늙은 양치기가 죽자 그와 평생 양을 돌봤을 개가  조문을 왔다.

관에 머리를 포갠 모습이 개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나도 비니가 숨을 거뒀을 때

그 차가운 알루미늄 위에 놓인 

비니의 몸에 내 몸을 포개어 묻었었다.


그때를 생각나게 하는 그림이다.

이전 01화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