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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May 22. 2020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어 갔지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3

비니는 명랑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쌌다.

그러나 입양 초기에는 가족 모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비니와 우리 집에 온 첫날 잠을 자려는데 거실에 쳐놓은 펜스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섞인 칭얼거림에 아내가 나가서 한동안 함께 있어 줘야 했다. 그러다 침실에 들어오면 또 칭얼거리고.      


이튿날 아침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환경이 바뀐 탓이려니 했다. 좀 더 지켜보자며.  

   

그다음 날 새벽에도 비니는 칭얼댔다. 아내가 내 옆구리를 찔러대는 통에 잠이 깨어서 비니에게 갔다. 그 아이는 아가처럼 내 품에 파고들었고 금세 잠에 빠졌다. 칭얼대던 아이가 스르륵 잠이 드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그 후로 비니 새벽 수발은 내 몫이 되었다. 자다가도 비니가 뒤척이는 소리를 느꼈고, 조금이라도 칭얼대면 반사적으로 나가 녀석을 안아 주었다. 당시 비니는 5개월이 안 된 강아지였기 때문에 하는 짓도 아기 같았다. 진짜 많이 먹고, 자고, 싸고 그랬다.      


녀석은 이가 나려는지 입에 닿는 건 모두 물어댔다. 소파는 축축했고 모아둔 신문은 다 찢어졌다. 그렇게 비니 따라다니고 치우다 보면 녀석은 아기처럼 갑자기 잠이 들곤 했다.  

    

  “아들이 어릴 땐 밤새 울어도 꿈쩍도 안 했으면서 비니 소리는 잘 듣네?”      


아내가 아들이 아기였을 때와 비교하며 눈을 흘겼는데, 비니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고, 스킨십만큼 정이 쌓이고,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비니가 우리 집에서 적응하는 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이 알게 되고, 인정해야 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미 전 주인으로부터 활발하다는 얘기는 들어서 좀 개구진 것은 그러려니 했다. 세상의 모든 강아지나 아기들은 좀 부산스러우니까. 그러나 진짜 복병은 딴 데 있었다.


털이었다. 개가 털이 많은 짐승이긴 하지만 비니는 너무 많이 빠졌다. 당시 이사를 해서 새로 인테리어를 한 지 얼마 안 된 집이었기에 아내는 청결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털은 날리고 솜뭉치도 굴러다녔다.   

  

털 고민 해결을 위해 인터넷에 ‘코카’를 검색해 보면 털 관련 ‘지식인’이나 ‘블로그’가 많이 나왔다. 지금도 ‘초록창’에 ‘코카스파니엘’을 치면 ‘털 빠짐’이 연관 검색어로 함께 뜬다. 코카의 우아한 외모 뒤에는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비니의 새로운 면들을 알아가는 동안 그 아이 또한 우리를 알아갔다. 머리가 좋은 건지 처세술이 좋은 건지 가족들의 특성이나 역할을 금세 파악해 버린 것이다.  

   

먼저 아내는 밥과 물을 주는 담당으로 파악했다. 아내가 거실 쪽으로 나오기만 하면 베란다 옆 밥그릇과 물그릇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몸통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아내의 볼 일이 배식이 아니면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내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 따가운 눈길을 외면 못 한 아내는 비니 입에 간식을 넣어 주곤 했다.     


나는 산책 도우미로 알고 있는 듯했다. 새벽에 깨서 시간을 보내게 되니 어떤 날에는 산책하러 가게 되었고 어느새 산책은 새벽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주말에는 낮에도 하였지만. 그래서인지 내가 나갈 준비를 하면 비니는 현관에서 차렷 자세로 기다리곤 했다. 그 외출이 출근길이던 재활용하러 내려가는 길이든 상관 않고 자기와 나의 산책으로 연관 짓는 듯했다.     


아들은 똥 치우는 아이로 취급했다. 비니를 입양하기 전에 똥은 자기가 책임지고 치우겠노라 다짐을 한 아들은 묵묵히 그 소임을 다하는 어린이였다. 그 역할을 비니는 빨리도 알아챘다. 응가만 하면 아들을 쳐다보았고, 혹시 방에 들어가서 자기의 배변을 모른다 싶으면 아들 방문 앞에서 칭얼댔다.

    

그렇게 비니와 우리, 우리와 비니가 서로를 알아가며 가족이 되어갔는데 그 상황을 확실히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코카스패니얼은 털이 무척 무성하고 길다. 그냥 두면 그야말로 털 뭉치가 된다. 천방지축 털 뭉치. 그래서 동네 애견 미용샵에서 정기적으로 털 관리를 받았다. 그날도 미용을 마치고 나오는데 미용사가 뒤따라 나오며 한마디 한다.     


  “비니 아버님! 가방 두고 가셨어요.”     


내가 비니 아버님?

낯설었지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는 거로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니의 엄마. 아빠. 형이 되었다.     





"A Dead Heat"

영국의 화가 'Arthur J. Elsley'의 작품이다.


Dead Heat.

운동 경기에서 동시에 결승선에 들어온 걸 의미한다.

무승부, 호각의 의미도 있다.


그림에서 아이는 누구에게 먼저 먹을 걸 줄지를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맨 왼쪽의 강아지가 제일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을 텐데

오른쪽 강아지가 잽싸게 코를 들이밀었을 테다.

뒤늦게 알아챈 강아지는 기를 쓰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자기 몫도 있을 거라 믿으면서.


비니도 간식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간식 줄 마음이 없어도 간식을 주게 만드는 재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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